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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138

18세기의 세계경제 상황, 신대륙과 서유럽의 경제적 우위 서구의 금 개발과 경쟁 우위 신대륙의 금과 은은 여전히 유럽이 독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스페인의 은처럼 영국은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던 브라질, 특히 미나스제라이스에서 1700년대부터 발견된 막대한 금을 이용해 재정적으로 상당한 이득을 거뒀습니다. 사업의 성장과 정치적 안정, 그리고 의회가 지원하는 국가 부채와 더불어 금의 유입 덕분에 영국 정부는 낮은 금리로 대출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서구는 엄청난 양의 금을 개발함으로써 중대한 비교 우위를 달성했습니다. 아시아 강대국들은 서양인들에게 인기가 높았던 차와 도자기를 팔아서 금과 은을 받을 뿐이었지만, 서구인들은 이 엄청난 양의 금을 이용해 여러 나라에 진출했습니다. 영국과 프랑스가 인도에서 그랬던 것처럼 현지 병사를 고용했습니다. 서유럽의 세력 확장과 아메리.. 2023. 7. 5.
거리와 정보: 중세 유럽의 소통 방식과 그 한계 천리를 건너는 소식: 서신과 고전적인 정보 전달 방법 유럽에서 계몽주의가 꽃피웠지만 여전히 거리는 뛰어넘기 힘든 적이요, 정확한 소식은 사치였습니다. 유럽에서조차 사회는 소문과 억측에 시달렸습니다. 어떤 정보든 관련 서신을 기다린 후에야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서신은 언제 도착할지, 과연 도착은 할지도 알 수 없어서 동시에 여러 경로로 발송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인도에서 영국까지는 홍해나 페르시아만을 건너는 방법으로 중동을 통과하거나 해로로 희망봉을 돌아서 갔습니다. 콘스탄티노플에서 런던까지는 비엔나를 거쳐 육로로 가든지, 아니면 아드리아해를 건너 베네치아로 간 뒤 육로를 이용했습니다. 혹은 지중해를 따라 마르세유로 간 뒤 육로로 가거나, 해로만 이용하는 방법도 있었습니다. 이런 한계점에 .. 2023. 7. 5.
동양의 세력 전환, 명나라의 붕괴와 청나라의 탄생 명나라의 거대한 붕괴: 유럽과 유라시아를 뛰어넘는 변화 1360년대 말 건립된 중국 명나라의 붕괴는 유럽이나 유라시아의 그 어떤 사건과 비교해도 규모와 드라마 면에서 단연 최고였습니다. 명나라는 1126년부터 1234년 몽골제국에 무너질 때까지 중국 북부를 지배했던 금나라의 후손 만주족에 의해 전복되었습니다. 여진족은 17세기 초 천명제의 치하에서 만주 남동부 산악 지대의 본거지부터 만리장성 북부까지 영토를 확장했습니다. 몽골제국의 지도자 칭기즈칸이 그랬듯 천명제 역시 여러 부족을 화합시키고 기병 전투의 응집력을 높이기 위해 조직적인 방법들을 도입했습니다. 천명제는 1618년부터 계속해서 중국을 공격하는 한편, 중국 제국의 정치적 기술과 행정적 구조를 모방함으로써 자신드렝게 패배한 중국인들로부터 호감을 .. 2023. 7. 5.
일본의 다이묘와 도쿠가와 막부: 권력의 변천과 평화의 시대 일본의 통일 - 쇼군의 권력과 전국시대의 출현 일본은 유럽 제국들의 확장주의에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았습니다. 일본 내 권력은 정부의 수장 쇼군이 쥐고 있었습니다. 교토의 궁에 거주한 일왕은 세속적인 권한은 거의 갖지 않는 신성한 존재였습니다. 그래서 일왕은 지역 영주와 사무라이들의 세력 싸움에 따라 실제 권력이 위축되기 일쑤였습니다. 쇼군 가문 내 후계 문제로 1467~1477년 벌어진 오닌의 난 이후, 전국시대가 시작됐습니다. 다이묘로 알려진 지역 영주들이 급부상했는데 그들의 지위는 군사 작전의 승리 여부에 달려 있었습니다. 당시 다이묘 중 가장 유명했던 오다 노부나가는 1560년대와 70년대에 거의 모든 다이묘들을 제압하고 수장으로 군림했지만 1572년 부하의 배신으로 자살하고 맙니다. 노부나가의 .. 2023. 7. 5.
계몽주의 시대: 인간과 사회, 우주에 대한 새로운 이해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고 인류를 새로운 지향점으로 이끌었던 운동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계몽주의'입니다. 계몽주의는 단순히 한 사상 또는 이론이 아닌, 인간, 사회, 그리고 우주를 이해하고자 하는 욕구와, 그 이해를 통해 인간이 사는 환경을 개선하려는 의지를 담고 있습니다. 이는 비판적 사고와 이성의 활용을 필수적으로 강조하며, 18세기 유럽의 여러 사상가들의 연구와 토론을 통해 시작되었습니다. 이들 사상가들의 주요 관심사는 인간, 사회, 우주에 대한 정확한 이해였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사는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권력이나 전통에 의한 제한 없이 이성을 사용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이러한 사상이 현실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 그리고 어떻게 우리 사회에 반영되었는지 함께 살펴보며 이 .. 2023. 7. 3.
17세기 과학혁명, 종교개혁에서 기술적 격차까지 렌즈 개발과 유리 제조의 발전 종교개혁은 진실의 원천이자 보증이라는 가톨릭교의 역할에 일격을 가하고 경험적 인식 및 측량에 기반을 둔 과학적 연구를 장려함으로써 17세기 과학혁명의 서막을 열었습니다. 국가의 개입도 커져서 1660년 잉글랜드에서는 왕립학회가 설립되었습니다. 아이작 뉴턴의 작업은 서구의 사상이 상당히 발전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뉴턴과 로버트 로일을 비롯한 물리학자들은 과학 반응의 각종 법칙을 연구하는 데 보편적 적용 가능성을 추구했습니다. 물리 체계가 수식화되면서 과학적 관찰을 통한 이론적 추정도 가능해졌습니다. 기계론적 우주에 대한 강조, 역시 규칙적이고 예측 가능한 절차와 힘을 중요하게 여겼음을 보여줍니다. 과학적 관점을 통한 이해가 점점 더 확대되면서 이런 관점이야말로 서구적이며 서구.. 2023. 7. 3.
절대주의 시대 - 유럽의 권력 구조와 그 한계 절대주의의 진면목: 루이 14세 시대의 군주권력과 그 한계 전쟁이 계속되던 1560~1660년 이후 루이 14세 치하의 프랑스를 비롯, 각국에 통합과 안정의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각국의 군주들은 자신의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게 아니라 신께서 내리신 거라고 주장하며 백성들의 요구에 불복해선 안 된다며 절대주의로 알려진 정부 체계를 확립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은 널리 확산되었습니다. 절대주의는 본래 정부가 권력을 독점하고 무조건 군주의 뜻을 따르는 강력한 체제로 여겨져 왔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군주의 권력은 정부 요구에 대한 적개심, 관료주의에 대한 군주의 미약한 통제력, 그리고 군주의 적정한 권한 대한 태도에 따라 제약을 받았습니다. 또한 유럽에서는 폭정에 대한 명백한 적개심, 왕족의 바람직한 .. 2023. 7. 3.
유럽에서의 군사력 확장: 16세기와 17세기의 전쟁 16세기 유럽의 전쟁과 군사력 발전 인도와 중국을 포함한 여느 지역들처럼 유럽에서도 전쟁은 16세기 내내 계속되었습니다. 분쟁이 그토록 빈번했다는 것은 15세기말부터 16세기 초에 걸쳐 유럽 국가들의 군사 자금이 넉넉해졌음을 보여줍니다. 이는 정치 통합과 행정 발달, 흑사병의 재앙에서 회복되면서 진행된 경제성장 덕분이었습니다. 신교의 종교개혁으로 1520년대부터 이 같은 통합에 금이 가기는 했지만, 16세기에 인구가 증가한 덕분에 인력과 재정 면에서 더 많은 자원을 활용할 수 있었습니다. 정부의 세력이 강해지고 체계가 발달한 것은 해군력에서 가장 명확하게 드러났습니다. 15세기에 비해 함대의 규모도 커지고 전투력도 강해진 것입니다. 해상 전투를 위해서는 세심한 전략과 물류 지원, 정치적 헌신, 행정 경쟁.. 2023. 7. 3.
루터부터 가톨릭 재기까지: 16세기 종교개혁의 파도 유럽은 해외에서 경제적 확장을 이어갔지만 국내에서는 상당한 혼란을 겪고 있었다. 가톨릭교회의 부패로 불안감이 팽배하던 시절, 독일의 수도사 마르틴 루터는 1517년 비텐베르크의 한 교회 문에 직접 작성한 95개 논제를 꽂아놓음으로써 참혹한 심정을 공론화했습니다. 루터가 촉발한 종교개혁은 로마 가톨릭교의 부활이 될 수도 있었지만, 이내 루터교와 칼뱅주의를 필두로 하는 신교라는 전혀 다른 종교 체계를 탄생시켰습니다. 교황의 권위를 거부한 신교는 교회가 아닌 성경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이로 인해 성경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의 중요성이 강조되었고, 라틴어가 아닌 토착어로 된 성경이 선호되었습니다. 새로운 인쇄술은 종교개혁의 성공에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루터의 설교를 교회가 파기하는 것보다 인쇄기를 이용해 더 .. 2023. 7. 3.
세상을 변화시킨 르네상스: 교육, 문화, 예술의 전환점 중세 유럽에서 교육과 문화의 전환점: 르네상스의 시작 수 세기 동안 서구 기독교 국가들의 교육과 문화는 대게 수도원에서 한정적으로 이루어졌고, 주제 역시 신학이 대부분이었습니다. 학문적 연구도 종교 교리를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며 그림과 건축, 음악 역시 교회의 영억이었습니다. 15세기 이탈리아 북부와 중부를 휩쓴 문예부흥운동 르네상스가 이 상황을 완전히 바꾸지는 못했지만 평신도와 성직 임명권자들의 우려에 공감대를 형성했습니다. 13세기부터 이탈리아 도시들을 중심으로 중간 계급의 생활의 질이 높아지자 부유층은 자녀, 특히 아들들에게 더 나은 교육 기회를 제공하고자 애썼습니다. 인본주의의 등장과 르네상스 예술의 발전 르네상스는 예술의 영역을 훨씬 뛰어넘었습니다. 14세기부터 시인 페트라르카에 영감을 받은 일련.. 2023. 7. 2.
유럽의 아프리카 점령: 이슬람의 저항과 아프리카 노예의 부상 유럽의 아프리카 점령과 그 저항: 포르투갈과 이슬람 세력의 충돌 유럽의 아프리카 점령은 16~18세기 사이로 국한되었습니다. 유럽 최강국이던 포르투갈은 1578년 모로코에서 참담하게 패한 뒤 모잠비크에서 내륙 진출이 막혀 앙골라까지 식민지를 확장할 수 없었습니다. 이슬람의 압박도 갈수록 거세졌습니다. 1591년 모로코 군대가 사하라를 건너 톤디비의 니제르강 유역에 위치한 송가이 제국을 파괴했습니다. 동쪽으로는 오스만 제국이 기독교인 에티오피아 왕국을 정복하려는 이슬람 아달왕국을 지원했습니다. 하지만 1562년부터 에티오피아를 지배한 사르사 덴젤이 오히려 아달과 오스만을 물리치고 왕국을 확장했습니다. 사하라 이남 지역의 내부 분쟁과 가뭄: 사회적 혼란과 노예화 아프리카 사하라 이남 지역에서는 잦은 분쟁이 .. 2023. 7. 2.
오스만제국의 건국과 몰락 유럽인들이 해상 제국을 건설하는 사이 비유럽 세계에서는 육지 제국들이 확대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이슬람교를 신봉하는 투르크족의 오스만 왕조는 13세기 말 아나톨리아에 공국을 세운 뒤, 1204년 4차 십자군 전쟁 당시 콘스탄티노플 함락으로 상당히 약해진 비잔티움 제국과 연이은 전투를 벌여 영토를 확장했습니다. 1354년 유럽 겔리볼루 반도에 첫발을 디딘 오스만 왕조는 1389년 코소보에서 세르비아인들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면서 14~15세기 발칸 반도 정복에 성공했습니다. 오스만 제국이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이유는 비잔티움 제국뿐 아니라 저항하던 기독교 국가들도 같이 쇠락한 덕분이었습니다. 1402년 티무르의 공격으로 오스만 제국의 영토 확장은 제동이 걸렸지만, 이내 재개되어 1453년 술탄 메흐메트 2세.. 2022. 11. 4.
조선 전기 시대 과학 기술의 발달 소개 조선 초 세종을 전후한 시기에는 과학 기술이 매우 발달하였습니다. 이는 당시의 집권 세력이 민생 안정과 부국강병에 필요한 과학 기술의 중요성을 인식하였고, 서역과 중국의 선진 과학 기술을 수용하였기 때문입니다. 이 시기에는 농민 생활과 국가 경제의 기반이 되는 농업에 도움을 주는 '천문학'을 특히 중요시하였습니다. 태조 때에는 고구려 천문도를 바탕으로 별자리를 돌에 새긴 '천상열차분야지도'를 만들었습니다. 세종 때에는 천체 운행을 측정하는 혼천의와 간의, 토지 측량 기구인 인지의와 규형, 시간을 측정하는 앙부일구(해시계), 자격루(물시계) 등을 만들고, 서양보다 200년 앞서 강수량을 측정하는 측우기를 만들어 농사에 활용하였습니다. * 역법의 발달 : 당의 선명력(통일 신라, 고려) -> 원의 수시력(고.. 2022. 10. 26.
우리나라 국보 12호, 구례 화엄사 각황전 앞 석등에 대하여 구례 화엄사 각황전 앞 석등 : 구례 화엄사 각황전 앞 석등은 신라 문무왕 17년(677)에 의상 조사가 조성한 것입니다. 우리나라 최대의 석등으로, 높이가 6.36m입니다. 석등의 형태는 3천 년 만에 한 번 핀다고 하는 우담바라화의 꽃잎인데, 이 꽃은 부처님 오심이 지극히 드문 일이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꽃의 8 잎은 8 정도[정견(正見), 정념(正念), 정정진(正精進), 정명(正命), 정업(正業), 정어(正語), 정사유(正思惟), 정정 (正定)]이고, 화창(火窓) 넷은 사성제[고집멸도(苦集滅道)]와 부처님의 광명이며, 북의 모습은 진리의 소리라고 합니다. 곧 8 정도로 수행하여, 사성제의 진리의 이치를 밝히고, 광명을 놓고, 진리의 소리를 중생들에게 들려주어, 마음의 등불[자등명 법등명 (自燈明 法.. 2022. 10. 24.
전 세계를 뒤흔든 물건, 설탕의 비밀 세상을 바꾼 물건이 고작... 설탕? 설탕 : 설탕(屑糖, sugar)은 사탕수수나 사탕무에서 얻은 원당을 정제공장에 투입하여 만든 천연 감미료로, 수크로스(자당)를 주성분으로 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종류의 음식에 널리 쓰이며 특히 과자나 빵에는 반드시 쓰입니다. 세계를 움직여온 세계 상품 중 첫 사례가 설탕입니다. 그래서 16세기에서 19세기에 걸쳐 전 세계의 정치가들과 실업가들은 설탕의 생산권 확보와 그 유통의 장악 문제를 놓고 온갖 지혜를 짜내느라 고심했습니다. 그 결과, 브라질이나 카리브해의 섬들에 사탕수수 생산을 위한 대농장, 즉 플랜테이션들이 만들어졌습니다. 감미료가 부족했던 시대에 설탕의 중독성은 엄청났지만 뜨겁고 습한 열대 지방에서만 자라는 설탕 수수는 재배하기 상당히 어려운 작물이었습니다.. 2022. 6.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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