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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철학

탈레스의 환원주의

by EDMBLACKBOX 2021. 3.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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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환원주의 - 탈레스

우리 주변에는 원조라는 것이 수없이 많습니다. 홍대 떡볶이와 신천 떡볶이의 원조가 있는 것과 같이 말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서로 떡볶이의 원조라고 주장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파생된 단어들이 원조 1호, 진짜 원조, 원조의 원조 등 이상한 말들까지 생겨났습니다.
이와 같이 서양 철학에도 원조가 있습니다. 맛집과는 다르게, 철학계에서는 모두가 단 한 사람을 원조라고 하는데 그 인물이 바로 탈레스(BC625? ~ BC546?)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를 '철학의 아버지'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탈레스가 서양 철학의 원조였던 이유에 대하여 천천히 알아보겠습니다.

인류 최초의 철학
고대 서양철학사라고 한다면 흔히 소크라테스(BC470 ~ BC399)나 플라톤(BC427 ~ BC347)을 떠올리곤 합니다. 하지만 이들보다 앞서 태어난 인류 최초의 철학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바로 기원전 6~4세기에 소아시아에서 주로 활동 '자연철학자'들입니다. 탈레스가 태어난 소아시아의 밀레투스에서는 이후 아낙시만드로스와 아낙시메네스도 등장했는데, 이 자연철학자들은 '밀레투스학파'라고 합니다. 소크라테스 이전에 나타났다고 해서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이라고도 합니다.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 - 자연철학
자연철학자들이 주로 활동한 소아시아는 4대 문명의 하나인 유프라테스·티그리스 문명이 싹튼 곳이었습니다. 커다란 강과 비옥한 토지를 바탕으로 농업이 발전한 곳이었기에 자연히 하늘과 별, 계절, 날씨 등에 민감할 수밖에 없어서 인간보다 자연에 주목한 자연철학이 먼저 발전하게 된 것입니다.
당시 매년 여름이면 나일강이 범람했는데, 사람들은 나일강의 신 하피가 화가 나서 그렇다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는 에티오피아 고원 일대에 내린 집중호우가 몇 개월이라는 시차를 두고 나일강까지 흘러와 강물이 크게 불어났기 때문이지만, 과학기술이 고도화되어있지 않은 그 시절 사람들은 알 수가 없었습니다.


탈레스는 나일강의 범람은 북쪽에서 불어오는 계절풍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의 관점으로 보면 분명하게 틀린 설명이지만 중요한 것은 탈레스가 자연현상을 설명한 방식이 있다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신의 분노 같은 초자연적 현상이 아니라 계절풍과 같은 자연현상으로 설명한 것이니 이것은 인류에게 새로운 축복과 영감을 기여한 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드디어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에 변화가 생긴 것입니다.

탈레스가 피라미드의 높이를 계산했던 방법

기하학, 철학, 과학 등에서 영향을 끼친 탈레스
탈레스의 설명은 요즘 우리가 아는 과학과 많이 닮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탈레스를 '최초의 철학자이자 과학자', '철학의 아버지'로 부릅니다. 탈레스는 기하학과 천문학에도 조예가 깊었는데, 여러 가지 기하학 정리들을 제시했을 뿐 아니라 피라미드 그림자의 길이를 이용해서 그 높이를 계산했습니다. 또 해와 달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기원전 585년 5월 22일에는 낮에 밤이 온다"라는 예언도 했습니다. 인류 최초로 일식을 예언한 것이죠.

만물의 근원은 물입니다.
기원전 8세기에 그리스 시인 헤시오도스가 그리스 신들의 계보를 정리한 '신통기'에 따르면, 태초에 무한의 공간에는 카오스가 있었고 그다음 대지의 신인 가이아와 모든 물질을 결합하고 생성하게 하는 정신적인 힘인 에로스가 생겨났습니다. 카오스에서 어둠의 신 에레보스와 밤의 신 닉스가 생겨났고, 둘 사이에서 창공의 신 아이테르와 낮의 신 헤메라가 태어났습니다. 이들은 모두 신적 존재인 동시에 인간의 조상으로 숭배받았다고 합니다. '누가 이 세계를 만들었을까?' 사람들은 이 의문에 신화로 답을 한 것입니다.
여기서 탈레스는 이전과는 다른 질문을 던집니다. "세계의 근원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해 본인 스스로 "만물의 근원은 물이다"라고 답합니다. 비로소 인류가 신화에 벗어나 세계의 본성을 찾고자 탐구를 시작한 것입니다.
기존에 오직 신만을 바라고 신에게 의존하던 당시에 '만물의 근원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함으로써 완전히 새로운 생각을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후 아낙시메네스는 만물의 근원은 공기라고 답했고, 또 다른 철학자 데모크리토스는 원자라고 주장했습니다.
후대에 이 원자 모델은 돌턴, 톰슨, 러더퍼드, 보어의 모델로 발전했습니다. 현대에는 만물은 양성자와 중성자로 되어 있고, 이것은 다시 쿼크로 이루어져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가장 혁신적인 생각이 있습니다. 바로 만물의 근원에 대한 최초의 질문을 던진 탈레스의 "만물은 물이다"라는 생각입니다.
탈레스라는 인물로 인하여 최초의 환원주의적인 생각, 철학적 사유가 이렇게 시작한 것입니다. 환원주의는 복잡하고 변화무쌍한 자연도 근본적으로 가장 단순하고 변하지 않는 무엇인가로 구성되어 있다고 여깁니다. 탈레스의 생각과 주장은 이성적 사유의 시작, 즉 최초의 철학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밀레토스의 탈레스, 출처 : 위키백과



환원주의의 사전적 개념 : 복잡하고 높은 단계의 사상이나 개념을 하위 단계의 요소로 세분화하여 명확하게 정의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견해

미토스(mythos)와 로고스(logos)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자연현상을 초자연적인 신화로 이해했습니다. 천둥과 번개가 치는 이유는 전기적 방출이 아닌 제우스 신이 노했기 때문이라고 봤고, 바다에 파도가 몰아치는 원인은 바람이 아닌 포세이돈이 화났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고대 그리스 문명뿐 아니라 대부분의 고대 문명이 비슷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신화를 그리스어로 미토스(mythos)라고 합니다.

철학적 사유는 미토스의 반대편에 있었습니다. 이제 자연철학자들은 자연현상을 사유의 힘으로, 즉 이성적인 생각을 통해서 이해하려고 했습니다. 그리스어로 이성적 사유를 로고스(logos)라고 합니다. 철학의 시작은 결국 미토스에서 로고스로 넘어가는 과정을 말합니다. 자연철학자들을 통해 드디어 철학이 시작된 것입니다.
현대 물리학자들은 물질을 입자가속기에 넣어 충돌시켜 쪼개고 그 쪼갠 알갱이들이 과연 무엇인지 알아내기 위한 연구에 몇십 조나 되는 돈을 투자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만물의 구성 요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 그렇습니다. 물리학자들의 연구결과는 탈레스가 최초로 던진 질문에 대한 최신 버전의 답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아직도 탈레스가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이제 왜 탈레스를 최초의 철학자라 하는지 감이 잡힐 겁니다. 관점의 변화가 세상을 전혀 다르게 보도록 만들었고, 몇천 년에 걸쳐 고민할 거리를 던져준 것입니다. 근원적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바로 철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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