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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세계사

오스만제국의 건국과 몰락

by EDMBLACKBOX 2022. 1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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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만 제국의 건국

유럽인들이 해상 제국을 건설하는 사이 비유럽 세계에서는 육지 제국들이 확대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이슬람교를 신봉하는 투르크족의 오스만 왕조는 13세기 말 아나톨리아에 공국을 세운 뒤, 1204년 4차 십자군 전쟁 당시 콘스탄티노플 함락으로 상당히 약해진 비잔티움 제국과 연이은 전투를 벌여 영토를 확장했습니다.

 

1354년 유럽 겔리볼루 반도에 첫발을 디딘 오스만 왕조는 1389년 코소보에서 세르비아인들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면서 14~15세기 발칸 반도 정복에 성공했습니다. 오스만 제국이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이유는 비잔티움 제국뿐 아니라 저항하던 기독교 국가들도 같이 쇠락한 덕분이었습니다.

 

 

앙카라 전투

1402년 티무르의 공격으로 오스만 제국의 영토 확장은 제동이 걸렸지만, 이내 재개되어 1453년 술탄 메흐메트 2세는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합니다. 오스만 제국은 재빠르기로 이름난 아시아 경기병과 보병대에 화약까지 활용하여 전투력을 극대화했습니다. 이를 토대로 16세기 초, 일개 부족이던 오스만은 제국을 건설하는 데 성공합니다.

 

1514년 오스만 제국의 술탄이었던 '냉혹한 군주' 셀림 1세는 페르시아를 정복한 사파비 왕조를 물리쳤고 이후 1517년에는 맘루크족도 격파해 시리아, 레바논,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이집트까지 점령했습니다. 이로써 오스만 제국은 이집트에서 시작하여 북아프리카 해안과 홍해의 아덴까지 권세를 확장한 것입니다.

 

 

술레이만 1세

1520년대, 셀림의 아들이던 위대한 술레이만은 유럽으로 눈을 돌려 베오그라드와 로도스를 점령하고 헝가리를 물리친 뒤 비엔나를 포위했지만 점령에는 실패했습니다. 곧이어 사파비 왕조 공격에 군사력을 총동원해 이라크를 정복하면서 유럽에 대한 압박은 한층 완화되었습니다. 덕분에 기독교 국가들은 핵심 요지들을 오스만의 공격으로부터 지켜낼 수 있었는데 1565년 몰타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오스만 제국은 항구도시이자 수도인 콘스탄티노플을 중심으로 대규모 해상 전투력을 발전시켰습니다. 인도양과 페르시아만까지 위세를 떨쳤지만 대서양 강대국들만큼 세계적으로 뻗어나가지는 못했습니다. 가장 잘 알려진 1571년 레판토 해전에서 오스만 제국은 스페인-베네치아 연합군에 참패당했지만 그렇다고 오스만 제국 해군력이 떨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보다 갤리선 운항이나 최정예 보병대인 예니체리에 노예들을 투입한 게 패배의 원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베오그라드 전투, 그리고 오스만 포병대

17세기에 접어들면서 오스만 제국은 급격히 악화됩니다. 1683년 헝가리에서 쫓겨난 뒤 두 번째로 비엔나를 포위했지만 결국 패배합니다. 1717년에는 베오그라드를 빼앗깁니다. 물론, 1739년 이를 재탈환합니다. 프루트 강에서 러시아의 표트르 대제를 물리치고 베네치아로부터 그리스 남부를 재탈환하는 등 한동안 엄청난 회복력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1730년대 말부터 러시아가 끈질기게 압박해왔습니다. 결국 오스만 제국은 1812년 흑해의 북부 해안을 내주고 도나우강 남부까지 밀려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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