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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세계사

전 세계를 뒤흔든 물건, 설탕의 비밀

by EDMBLACKBOX 2022. 6.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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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탕(Sugar)

세상을 바꾼 물건이 고작... 설탕?

설탕 : 설탕(屑糖, sugar)은 사탕수수나 사탕무에서 얻은 원당을 정제공장에 투입하여 만든 천연 감미료로, 수크로스(자당)를 주성분으로 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종류의 음식에 널리 쓰이며 특히 과자나 빵에는 반드시 쓰입니다. 세계를 움직여온 세계 상품 중 첫 사례가 설탕입니다. 그래서 16세기에서 19세기에 걸쳐 전 세계의 정치가들과 실업가들은 설탕의 생산권 확보와 그 유통의 장악 문제를 놓고 온갖 지혜를 짜내느라 고심했습니다. 그 결과, 브라질이나 카리브해의 섬들에 사탕수수 생산을 위한 대농장, 즉 플랜테이션들이 만들어졌습니다.

 

 

마데이라 제도(남아프리카 위쪽 부근)

감미료가 부족했던 시대에 설탕의 중독성은 엄청났지만 뜨겁고 습한 열대 지방에서만 자라는 설탕 수수는 재배하기 상당히 어려운 작물이었습니다. 1424년 포르투갈인들이 정착하기 시작한 대서양의 마데이라 제도에 플랜테이션 노예제가 설립된 이후, 설탕은 노예무역 활성화에 가장 큰 기여를 했습니다.

 

그곳에서 시작된 노예-설탕 경제는 포르투갈 식민지로서 192대의 사탕수수 압착기를 보유한 브라질로, 이후에는 서인도제도로 확산되었습니다. 영국이 스페인으로부터 빼앗은 자메이카에는 1684년 당시 246개의 설탕 농장이 있었습니다. 노예들은 대부분 서아프리카 출신으로, 서아프리카에는 이미 이슬람 세계에 노예를 대량 공급하는 체계가 잘 확립되어 있었습니다.

 

아프리카 노예무역은 신대륙 동부 해안의 인구와 경제, 사회 및 정치까지 바꿔놓았습니다. 약 1,250만 명의 노예가 아프리카에서 출발했는데 항해 도중 180만 명이 사망했습니다. 이들은 다양한 노동에 투입되었지만 대개는 농장에서 일을 했는데 노동 환경은 열악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사탕수수를 재배하는 노예 이미지화

가장 많은 수익을 내는 플랜테이션 제품은 설탕이었지만 그밖에 담배, 커피, 초콜릿 등도 재배되었습니다. 감미료로 꿀 대신 설탕을 원하는 수요가 늘고 공급량 또한 증가하면서 17세기에는 투자가 늘고 가격이 떨어졌습니다. 또한 설탕이 첨가된 음료가 유럽인들의 취향을 저격해 인기가 커졌습니다. 초콜릿에도 설탕이 첨가되어 단맛이 생겼고, 덕분에 유럽에서 초콜릿의 인기가 높아져 주요 원료인 카카오의 수입도 늘었습니다.

 

중국산 차를 비롯한 카페인 음료의 소비가 늘어난 것도 설탕 수요 증가에 기여했습니다. 찻주전자도 각 가정마다 하나씩 있을 정도로 흔한 물건이 되었고, 이후 잼이나 케이크, 비스킷, 약에도 설탕이 첨가되면서 높은 인기를 증명했습니다.

 

 

17세기 사탕수수(설탕) 재배

17세기에 등장한 설탕 경제에서는 까다롭고 위험한 작업에 막대한 노동력이 투입되었습니다. 설탕 수요가 늘수록 노예제도 활성화되었습니다. 1,250만 명이 넘는 노예들은 턱없이 좁은 선박에 빽빽이 들어찬 채 끔찍한 환경을 견디며 아프리카에서 신세계로 건너갔습니다. 아래가 바로 그 사진입니다.

노예 수용 배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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