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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한국사

조선 전기의 문화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었을까?

by EDMBLACKBOX 2022. 3.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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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1459년) 때 간행된 훈민정음언해 이미지

15세기를 주도하던 관학파는 민생 안정과 부국강병을 위해 과학 기술과 실용적 학문을 중시하여 훈민정음의 창제(1443년)를 통해 민족 문화를 꽃피웠습니다. 관학파는 성리학을 국가 이념으로 내세웠으나, 성리학 이외의 학문과 사상이라도 수용하는 자세를 취하여 자주적인 민족 문화가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한편 교육 기관으로는 최고 학부인 '성균관'을 서울에 두었고, 중등 교육 기관으로 중앙에 4 학과 지방에 향교를 설치하였습니다. 그 외 서원과 초등 교육을 담당한 서당이 있었습니다. 성균관의 입학 자격은 소과 합격생인 생원과 진사로 제한되었습니다. 지방의 향교는 부·목·군·현에 하나씩 설립하여 성현에 대한 제사와 유생의 교육, 지방민의 교화를 담당하게 하였고 중앙에서 교수 또는 훈도를 파견하여 교육을 담당하게 하였습니다.

 

 

백운동 서원을 세운 주세붕

서원은 중종 때 주세붕이 세운 백운동 서원이 시초이며, 명종 때 이황의 건의로 소수 서원으로 사액이 되어 국가의 지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후 나라에서도 서원의 설립을 장려하여 많은 서원이 설립되었습니다.

 

조선은 건국 초부터 왕조의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해 역사서 편찬에 힘썼는데 특히 조선왕조실록은 세계에 자랑할 만한 기록 문화유산입니다. 태조 때 정도전은 '고려국사'를 편찬하여 조선 건국의 정당성을 밝히려 하였고, 성종 때 서거정 등에 의해 동국통감이 간행되어 편년체로 고조선부터 고려 말까지 역사를 정리하였습니다. 한편 16세기에는 존화주의적 입장에서 박상의 '동국사략'이 편찬되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이 중요한 이유는 뭘까?

조선왕조실록 중요성

'조선왕조실록'은 세계에서 가장 상세하면서도 포괄적인 역사 기록물입니다. 그 중요성이 매우 크기 때문에 사람들은 전쟁과 재난으로부터 이 훌륭한 기록물을 보호하는 데 온갖 지혜와 책략을 쏟았습니다. 왕조실록 편찬에 학식이 높은 학자들과 필요한 모든 자원을 동원하였습니다. 국가적 재정이 어려운 시기에도 편찬 작업은 계속되었습니다. 최고의 중요성에 확신을 가지고, 실록을 한자(漢字)에서 한국어로 번역하는 작업과 디지털 형식으로 기록하는 작업을 완료하였다고 합니다.

 

 

혼일강리역대국도 지도 사진

조선 초에는 중앙 집권과 국방 강화를 위해 지도와 지리지의 편찬이 이루어졌습니다. 태종 때 만들어진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는 동양에서 만들어진 가장 오래된 세계 지도입니다. 세종 때에는 전국 지도인 '팔도도'를 만들었고, 세조 때에는 양성지 등이 '동국지도'를 완성하였습니다. 16세기에도 많은 지도가 만들어졌는데 그중 조선 방역지도가 오늘날 전해지고 있습니다.

 

성종 때에는 각 지역의 연혁, 산천, 토지, 교통, 인물 등의 내용을 담은 '동국여지승람을 편찬하였으며, 중종 때에는 이를 보충하여 '신증동국여지승람을 만들었는데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습니다.

 

 

국조오례의서례

유교적 질서 확립을 위해 윤리와 의례에 관한 서적도 만들어졌습니다. 세종 때에는 모범이 되는 충신, 효자, 열녀의 행적을 그림으로 그리고 설명을 붙인 '삼강행실도'를 편찬하였으며, 성종 때에는 국가 의례를 정비하여 '국조오례의'를 편찬하였습니다. 한편 유교적 통치 규범을 성문화 한 '경국대전'이 성종 때 완성되었습니다.

 

16세기 사림은 연장자와 연소자, 친구 사이에 지켜야 할 윤리를 강조한 '이륜행실도'와 어린이가 지켜야 할 예절을 정리한 '동몽수지' 등을 간행, 보급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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