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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철학

물리주의 철학에 대해 알아보자

by EDMBLACKBOX 2021. 1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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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주의(Physicalism)

모든 것은 물리적이다.

어떤 사람들은 인간에게 영혼이 존재하고, 따라서 인간은 육체와 영혼으로 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입장을 '실체 이원론'이라고 합니다. 반면 어떤 사람들은 실체는 하나라고 합니다. '영혼은 존재하지 않고, 존재하는 것은 오로지 육체일 뿐'이라는 입장도 있고,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영적인 것일 뿐 육체는 허상에 불과하다'는 입장도 있습니다. 이 중에서 존재하는 것은 오로지 육체일 뿐이라는 입장을 물리주의라고 합니다. 물리주의란 간단히 말해서 모든 것은 물리적이라는 주장입니다. 눈앞에 보이는 물질적인 대상들뿐 아니라 영혼, 정신, 생각, 감정 등과 같은 비물질적인 것들도 모두 물리적인 것으로 봅니다.

 

* 실체 이원론 = 육체 + 영혼

* 실체 일원론 = 육체와 영혼 분류

 

 

물리주의(Physicalism)

물리주의는 모든 것은 물리적이라고 여기는 철학 상의 입장입니다. "의자와 책상이나, 돌멩이 같이 일반적으로 물리적 대상으로 여겨지는 것뿐만이 아니라, 가치, 의미, 지식, 마음 등 일반적으로 그다지 물리적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것까지 포함하여, 모든 사물에 대하여, 그것은 물리적이다"라고 여기는 것이 물리주의입니다. 세계는 심적인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여기는 관념론이나, 세계는 심적인 것과 물적인 것 두 종류로 이루어져 있다고 여기는 이원론 따위와 대립합니다. 유물론(Materialism)과 유사한 점은 많지만, (물리학에의 환원과 같이) 그 주장 내용은 반드시 동일하지는 않습니다. 논리 실증 주의자들은 여러 개별 과학은 물리학으로 환원 가능하다는 형태로 물리주의를 논했습니다. 물리주의라는 말은 오토 노이라트가 처음으로 정의했습니다.

 

현대 분석철학에서는 유물론의 일종인 물리주의가 형이상학에서 주류의 입장에 해당합니다. 다만 수리철학 등에서 수 같은 존재와 관련하여 이데아 같은 추상적인 존재자들의 필요성, 그리고 심리철학에서 의식 등과 관련하여 여러 문제들을 제기하고 있긴 합니다. 문제는 그런 문제들 자체가 아직 확실하게 정리된 것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의식은 정확히 무엇인지조차 아직 완전히 알려져 있지 않고, 수라는 개념에 추상적인 존재자가 필요한지 아닌지조차 논쟁거리라는 것입니다.

 

 

영혼이 실체로서 존재할까?

이 질문은 답하기가 꽤 힘듭니다. 20세기 철학자들은 이런 질문을 좀 더 가볍게 만들었습니다. "인간의 의식을 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인간의 심적 속성은 환원되는가? 어떤 이들은 심적 속성이 물리적 속성으로 환원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육체와 영혼이 모두 실체로서 존재하고, 물질적 속성은 육체로부터, 심적 속성은 영혼으로부터 나온다고 생각합니다(실체 이원론). 반면 어떤 이들은 영혼이 따로 존재하지 않고, 존재하는 것은 오로지 육체라고 생각합니다(실체 일원론). 이들 중에는 인간의 심적 속성은 물리적 속성으로 환원되지 않는다는 입장도 있고, 인간의 심적 속성도 물리적 속성으로 환원된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환원적 물리주의란?

환원적 물리주의는 심적 속성이 물리적 속성으로 환원된다는 입장으로 여기에는 행동주의, 유형 동일론, 기능주의 입장이 있습니다.

 

* 행동주의 : 우리는 다란 사람의 마음을 직접 볼 수 없습니다. 그 사람의 말, 표정과 행동을 보고 마음을 추측합니다. 행동주의자들은 이처럼 겉으로 보이는 것만을 마음으로 보자고 합니다. 마음은 밖으로 드러나는 행동으로 환원됩니다. 예컨대 기쁨은 웃는 행위, 슬픔은 눈물을 흘리는 행위로 환원된다는 것입니다.

 

* 유형 동일론 : 바늘로 손을 찌르면 따끔합니다. 피부 신경을 자극하면 그 자극이 신경을 타고 올라가 두뇌를 자극하고, 따끔하다는 느낌, 곧 마음을 갖게 됩니다. 유형 동일론은 이때 따끔하다는 마음과 두뇌가 자극을 받는 것이 동일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두뇌의 상태가 곧 마음이므로, 마음은 두뇌의 물리적 상태로 환원된다고 합니다.

 

* 기능주의 : 야구공에 맞으면 당연히 아픕니다. 통증이 없으면 야구공을 피하지 않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다칩니다. 그래서 인간은 통증이라는 마음을 가집니다. 기능주의는 마음이란 이처럼 생명이 살기 위해서 하는 어떤 기능이 환원된 것이라고 봅니다. 환원적 물리주의에 대한 반론도 있습니다. 인간도 원숭이도 통증을 느끼는데, 인간과 원숭이 두뇌의 물리적 상태는 같지 않습니다. 결국 통증이라는 마음을 실현하는 물리적 상태가 여럿 있을 수 있으므로, 마음이 물리적 상태와 동일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비환원적 물리주의

음식을 먹을 때 색, 맛, 통증처럼 주관적이고 의식적인 경험을 '감각질(qualia)'이라고 합니다. 비환원적 물리주의는 감각질 같은 심적 속성은 물리적 속성으로 환원되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메리의 방(Mary's room)

프랭크 잭슨의 '메리의 방'

메리라는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자신의 방 밖으로 나간 적이 없습니다. 그 방 안에 있는 모든 물건은 흰색, 검은색, 아니면 회색입니다. 메리는 인터넷을 통해 각 색의 파장이 얼마인지, 눈이 색을 어떻게 보고 두뇌의 어느 부분이 색을 인지하는지 등 색에 관한 정보를 공부하고, 자신이 색에 관한 모든 것을 아는 전문가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느 날 메리가 자신의 방에서 나왔는데, 빨간색 사과를 보고 충격을 받습니다. "아, 저게 빨간색이구나." 메리는 자기가 색에 대해서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빨간색을 본다는 심적 속성은 빨간색을 본다는 물리적 속성과 전혀 다른 것이었습니다. 즉 색에 대한 감각질은 결코 물리적으로 환원되지 않는다는 것이 잭슨의 주장입니다.

 

 

좀비 논변

데이비드 차머스의 좀비 논변

우리는 인간과 육체적, 물리적으로는 똑같지만, 마음이라고는 전혀 없는 좀비를 상상할 수 있습니다. 상상 가능한 것은 논리적으로 존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환원적 물리주의가 옳다면 이런 좀비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육체적, 물리적으로 똑같으면 마음도 똑같이 있어야 하는데, 좀비는 마음이 없습니다. 따라서 인지 철학자 데이비드 차머스(David Chalmers)는 환원적 물리주의는 틀렸고, '심적 속성은 물리적 속성으로 환원되지 않는다'는 비환원적 물리주의가 옳다고 주장합니다.

 

 

박쥐 논변

토마스 네이글의 박쥐 논변

박쥐는 높은 음파를 내어 그 반향을 탐지해 물체의 크기와 위치를 파악합니다. 그런데 인간인 우리는 박쥐가 음파로 앞의 물체를 확인했을 때 어떤 느낌을 받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박쥐가 되어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이 갖는 감각질에 대한 경험도 물리적인 어떤 것으로도 환원될 수 없다는 것이 네이글의 주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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