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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철학

앙리 베르그송 - 순수 지속으로서의 시간

by EDMBLACKBOX 2021. 10.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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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베르그송(Henri-Louis Bergson)

앙리 베르그송이란 누구인가?

앙리 베르그송은 프랑스 파리 출생이며, 1927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입니다. 직관으로 파악되는 생명의 순수 지속으로서의 시간을 창조로 보고, 이에 반하여 공간으로 시간을 고정하여 사유하는 과학적 사유를 비판하였습니다. 베르그송의 철학을 한마디로 말하면 지속(durée)의 철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베르그송에 따르면, 생명이 가지고 있는 시간은 '순수 지속'의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이 지속 그 자체는 '직관'을 통해서만 파악된다고 주장합니다. 수학적 시간이나 물리적인 시간은 추상적인 시간이기 때문에 진정한 시간이 아니고, 진정한 시간이란 것은 살아 움직임으로 인해 내적으로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창조의 시간이라는 것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운동하는 유동체를 분해하고 분석해서 이를 '공간'상으로 '고정'을 해서 보는 것은, 인간의 지성을 가지고 대상을 '과학적'으로 이해하려는 방식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가령 우리가 개구리를 공부할 때 구조를 알기 위해서 해부를 합니다. 그러면 해부학적인 개구리는 공부되지만 개구리는 이미 죽은 시체가 되어 있습니다. 즉, 죽어 있는 개구리를 공부하는 것처럼 '순수 지속'이 죽어있는 시간을 보는 것이 과학이며, 이와는 반대로 철학자는 '순수 지속'이 살아있는 생명체를 염두에 두고 철학을 해야 된다고 베르그송은 주장합니다.

 

 

시간의 공간화

우리는 공간을 나누어 사용합니다. 도시는 주거지역, 상업지역, 공장지역으로 구분하고, 건물은 사무실, 휴게실, 화장실로 구획해서 사용합니다. 시간도 마찬가지입니다. 학교에 가면 요일별, 시간별로 수업을 하고, 회사에 가면 출근시간, 점심시간, 퇴근시간으로 시간을 구분합니다. 즉, 시간을 공간처럼 이미지화해서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상 생활에서도 시간을 공간처럼 말합니다. "월드컵 시즌이 다가오고 있다"처럼 시간을 거리로 표현하고, "사건이 뒤로 갈수록 미궁으로 빠져들었다"처럼 시간을 방향으로 서술하기도 합니다. 영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This technique has been passed down to the present day(이 기술은 오늘날까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처럼 시간을 높이로 말하기도 하고, "We finished 10 minutes ahead of time(우리는 10분 일찍 끝냈다.)"처럼 시간을 위치로 서술하기도 합니다. 이렇듯 시간을 공간처럼 생각하는 것을 시간의 공간화라고 합니다.

 

 

제논의 역설과 시간과 공간

정말로 시간을 공간처럼 다룰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시간과 공간은 전혀 다릅니다. 우리는 공간 속을 왔다 갔다 할 수 있지만, 시간 속에서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특정 공간에 정지해 있을 수 있지만, 특정 시간에 정지해 있을 수는 없습니다. 시간은 끊임없이 흐릅니다. 제논이 제시한 '화살의 역설'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궁수가 활을 쏘면 화살이 날아가서 과녁에 도달할 것입니다. 그런데 화살이 과녁에 꽂히려면 그 절반이 되는 지점을 통과해야 하고, 절반 지점을 통과하려면 다시 그 절반이 되는 지점을 통과해야 하고... 결국 화살이 과녁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무한한 지점을 통과해야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화살이 유한한 시간 동안 무한한 지점을 통과할 수 있겠어요. 따라서 '화살의 역설'은 '나는 화살은 과녁에 도달할 수 없다', '나는 화살은 날지 않는다', 즉 운동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합니다.

 

프랑스의 현대 철학자 베르그송은 운동은 결코 나눌 수 없는데, 제논이 운동을 나누었기 때문에 이런 말도 안 되는 역설이 생겼다고 비판합니다. 시작부터 끝까지 한 번에 운동하는 것과, 시작에서 중간까지 한 번 한 다음에 중간에서 끝까지 해서 두 번 운동하는 것은 다릅니다. 운동을 나누면 질이 변하므로, 운동은 나눌 수 없다고 합니다. 또한 운동이란 일정 시간 동안 공간적 위치가 변하는 것이므로, 운동을 나눈다는 것은 곧 시간을 나눈다는 것인데, 시간은 나눌 수 없으므로 운동도 나눌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한 대중 강연에서 본인의 철학을 한마디로 요약해달라고 하자, 베르그송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시간은 존재한다. 그리고 그것은 공간이 아니다." 베르그송 철학의 중심에는 이렇듯 시간이 있기에, 그의 철학은 '시간의 철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순수 지속으로서의 시간

눈을 감고 명상할 때를 생각해보겠습니다. 여러 생각과 감정들이 중첩해서 생기기도 하고 동시에 사그라들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우리의 의식은 끊임없이 흘러갑니다. 이때 시간이 1초, 2초, 3초, 이렇게 구분되어 흐르는 것은 아닙니다. 과거와 현재, 미래가 정확하게 구분되는 것도 아닙니다. 과거의 감정이 현재의 감정과 뒤섞이기도 하고, 미래에 대한 생각이 현재의 생각과 뒤섞이기도 합니다. 베르그송은 시간은 원래 이런 거라고 주장하고, 이를 지속(Duration)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지속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서 개별자가 질적인 변화를 겪는 것을 말합니다. "순수한 지속은 명확한 윤곽도 없고, … 수와는 어떠한 유사성도 없이, 서로 녹아들고 서로 침투하는 질적인 변화의 연속일 것이다." 베르그송의 시간을 순수 지속으로서의 시간이라고 합니다.

 

 

베르그송과 아인슈타인

베르그송은 시간을 수량화해서 다루는 물리학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인슈타인이 파리에 왔을 때 상대성이론이 갖고 있는 여러 철학적 문제점들을 지적했습니다. 특수상대성이론에 따르면 움직이는 대상의 시간이 느려지는데, 베르그송은 이때 느려지는 것은 시간 자체가 아니라 시계의 속도와 운동의 속도라고 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과학자의 시간과 철학자의 시간은 서로 다른 모양이군." 베르그송은 아인슈타인의 노벨상 수상이 거론될 즈음, 상대성이론에 상을 주어서는 안 된다고 노벨상위원회를 설득합니다. 결국 아인슈타인은 상대성이론이 아니라 광전효과를 발견한 공로로 노벨상을 받았습니다. 나중에 베르그송은 자신이 상대성이론의 몇몇 개념들을 잘못 이해했다고 인정했고, 자신의 책 '지속과 동시성'을 사후 전집에서 빼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베르그송의 저서

ㅇㅇ

Essai sur les données immédiates de la conscience, Paris, Félix Alcan, 1889.

(국역본: 최화 옮김, 2001, 『의식에 직접 주어진 것들에 관한 시론』, 아카넷.)

 

Matière et mémoire. Essai sur la relation du corps à l'esprit, Paris, Félix Alcan, 1896.

(국역본: 박종원 옮김, 2005, 『물질과 기억』, 아카넷.)

(국역본: 최화 옮김, 2017, 『물질과 기억』, 자유문고.)

 

Le Rire. Essai sur la signification du comique, Paris, Félix Alcan, 1900.

(국역본: 김진성 옮김, 1983, 『웃음』, 종로서적. )

(국역본: 정연복 옮김, 2021, 『웃음』, 문학과 지성사.)

 

L'Évolution créatrice, Paris, Félix Alcan, 1907.

(국역본: 황수영 옮김, 2005, 『창조적 진화』, 아카넷. )

(국역본: 최화 옮김, 2020, 『창조적 진화』, 자유문고.)

 

L'Énergie spirituelle. Essais et conférences, Paris, Félix Alcan, 1919.

(국역본: 엄태연 옮김, 2019, 『정신적 에너지』, 그린비. )

 

Durée et Simultanéité. À propos de la théorie d'Einstein, Paris, Félix Alcan, 1922.

(제목을 한글로 번역하자면, '지속과 동시성'. 국내 출판은 안되었습니다.)

 

Les Deux sources de la morale et de la religion, Paris, Félix Alcan, 1932.

(국역본: 송영진 옮김, 1998, 『도덕과 종교의 두 원천』, 서광사.)

(국역본: 김재희 옮김, 2013, 『도덕과 종교의 두 원천』, 지식을 만드는 지식.)

(국역본: 박종원 옮김, 2015, 『도덕과 종교의 두 원천』, 아카넷.) La Pensée et le Mouvant. Essais et conférences, Paris, Félix Alcan, 1934. (국역본: 이광래 옮김, 2012, 『사유와 운동』, 문예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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