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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철학

보편논쟁 실재론, 유명론, 삼위일체에 대해 알아보자

by EDMBLACKBOX 2021. 8.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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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송논쟁 1년 VS 3년, 출처 : 은근한 잡다한 지식

보편 논쟁에 대하여

조선의 17대 왕인 효종이 사망하자, 계모인 자의대비가 상복을 몇 년 입어야 하는지를 두고 예송논쟁이 벌어졌습니다. 서인은 효종이 차남이므로 사대부의 예에 따라 자의대비가 상복을 1년만 입으면 된다고 주장했고, 남인은 효종이 차남이지만 국왕이기에 특별히 3년을 입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결국 서인의 주장을 받아들여 상복을 1년만 입는 것으로 일단락되었고, 남인은 귀향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상복을 1년 입든 3년 입든, 뭐가 그리 중요하다고 논쟁을 벌이고 유배까지 가게 된 것일까요? 여기에는 보이지 않는 권력 다툼이 숨어 있습니다.

 

서인들은 왕과 산하를 수평관계로 보았기에 왕이든 사대부든 똑같은 예를 갖추어 상복을 1년만 입으면 된다고 보았고, 남인들은 왕과 신하를 수직관계로 보았기에 특별히 3년 동안 입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정치적으로 해석하면 서인은 왕권을 약화시켜야 한다는 입장이고, 남인은 왕권을 강화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한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예법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정치권력을 어떻게 볼 것인가?'의 문제였던 것입니다.

 

중세 서양에서도 이런 문제가 있었는데 바로 '보편 논쟁'입니다. 3세기 무렵 시작되어 12세기 거쳐 15, 16세기까지 수백 년 동안 이어진 유명한 논쟁입니다.

 

보편 문제는 3세기에 그리스 철학자 포르피리오스(Porphyrios)가 처음 제기했는데, 6세기에 로마 철학자 보에티우스(Boethius)가 그의 글을 라틴어로 번역하면서 제대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보편 문제가 던지는 질문에 대해 알아봅시다.

 

 

보편자는 실재하는 것인가?

보편자는 실재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그냥 이름일 뿐일까요. 나라는 인간도 존재하고, 다른 사람이라는 인간도 존재합니다. 그런데 이런 개인(개별자) 말고 '인간'이라는 보편자는 존재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인간'이라는 보편자는 그냥 우리의 머릿속에만 있는 명사일 뿐일까요? 여기에 관한 3가지 이론이 있습니다.

 

 

실재론

나도 인간이고 다른 사람도 인간입니다. 이런 개별자들이 전부 인간일 수 있는 이유는 '인간'이라는 보편자가 존재하고, 나와 같은 개별자들이 '인간'이라는 보편자와 어떤 관계가 있기 때문이라는 주장입니다. 이런 입장을 '실재론'이라고 합니다. 한 가지 유념할 점은 보편 논쟁의 실재론은 근현대 철학에서 말하는 실재론과 의미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근현대 철학에서 실재론이란 정신적인 것이 아닌 '물질적인 것'이 진짜로 존재한다는 입장이고, 중세 보편 논쟁의 실재론은 인간과 같은 '관념'이 진짜로 존재한다는 입장입니다.

 

유명론

보편자 따위는 실재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이름일 뿐이라는 입장입니다. 즉 '인간'이라는 보편자는 단지 음성 이미지일 뿐이고, 보편자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온건 실재론

보편자가 존재하긴 하는데, 존재방식이 실재론과는 다르다는 주장입니다. 실재론은 보편자로서의 인간은 개별적인 인간과 별개로 존재해서 모든 개별자가 사라져도 그대로 남아 있다고 주장하지만, 온건 실재론은 보편자로서의 인간은 개별적인 인간들 안에 존재하기에 모든 인간이 사라지면 보편자로서의 인간도 사라진다고 봅니다.

 

 

보편 논쟁에 대한 종교적인 해석

중세의 보편 논쟁은 일종의 정치적 권력투쟁으로 볼 수 있습니다. 중세 교회의 중심은 당연히 로마 교황청이었는데, 11~12세기에 상업과 도시가 발달하면서 생긴 지방 소도시의 작은 교회들은 처음에는 로마 교황청의 지시를 따랐지만 머리가 굵어지면서 점점 다음과 생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은 어디에나 존재하는 분이므로 우리의 교회에도 당연히 하나님이 계신데, 굳이 우리가 교황청을 떠받들 필요가 있는 것인가?"

 

이에 교황청은 자신들이 보편교회로서 작은 교회들의 중심이고, 따라서 모든 권력이 보편교회로부터 나온다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보편 논쟁은 기독교의 죄와 구원의 문제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기독교에서는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따 먹었기 때문에 우리 모두가 원죄를 가지고 태어난다고 주장합니다. 선악과는 아담과 이브가 먹었는데, 아담의 죄가 우리의 죄가 되는 이유는 아담이 보편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의 구원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으로써 인간은 죄를 씻고 구원받을 가능성을 얻었는데,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예수인데 어떻게 우리가 구원받을 수 있을까요. 실재론자들은 예수가 보편 인간이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즉 인간의 대표자라는 것이며, 보편자가 존재해야 인간이 원죄를 가지게 되고, 예수가 인간을 구원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한편 기독교 교리에 따르면 성부, 성자, 성령이 모두 하나의 하나님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성부이기도 하고, 성자이기도 하고, 성령이기도 합니다. 문제는 성부와 성자, 성령이 서로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삼위일체를 둘러싼 논쟁이 천년 넘게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보편 논쟁의 실재론을 받아들이면 이 문제가 쉽게 해결됩니다. 성부와 성자, 성령의 보편자를 하나님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보편자로서의 하나님이 있고, 성부, 성자, 성령이 모두 하나님이면서 각각 다를 수 있는 것입니다. 특히 로마 교황청의 권위를 옹호하는 사람들이 기를 쓰고 보편 논쟁의 실재론이 옳다고 주장했습니다.

 

좌측부터 토마스 아퀴나스와 오컴의 윌리엄

철학적 계보

플라톤은 현실세계보다 현실 너머의 이데아의 세계를 중요시했는데, 플라톤의 이데아론은 실재론과 통하는 면이 있습니다. 인간이라는 이데아가 있으니 나도 인간일 수 있고, 다른 사람도 인간일 수 있습니다. 플라톤의 이데아론에서 이데아를 '보편자'로 바꾸면 그대로 보편 논쟁의 실재론이 됩니다. 플로티노스(Plotinus)와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는 플라톤의 이데아 사상을 기독교 사상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들은 중세 초기에 플라톤 철학의 이데아를 보편자로 해석하면서 그대로 실재론자가 되었습니다. 9세기 에리우게나, 11세기 안셀무스와 샹포의 기욤 등이 바로 이러한 실재론자들입니다.

 

그러다가 11세기 무렵 프랑스 철학자 로스켈리누스(Roscellinus)가 나타나서 얼어 죽을 보편자가 어디에 있냐며 유명론을 주장했습니다. 이에 실재론자인 안셀무스는 로스켈리누스를 파문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12세기에 굉장히 똑똑한 사람이 나타났는데 그 사람은 바로 페르투스 아벨라르두스(Petrus Abaelardus)입니다. 젊었을 땐 실재론자인 기욤의 수업도 들었고 유명론자인 로스켈리누스의 수업도 들었다고 합니다. 그는 보편자가 실제로 존재하기는 하는데, 이데아처럼 현실 너머 어딘가가 아니라 개별자 안에 실재한다는 절충안을 내놓았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데아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자 안에 일종의 형상처럼 존재한다고 봤습니다. 이렇듯 온건 실재론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13세기에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열광한 사람이 또 있었는데 바로 토마스 아퀴나스입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온건 실재론을 받아들였고, 약 2670개의 논문으로 구성된 방대한 '신학대전'을 써서 아리스토텔레스 철학과 기독교를 결합해 신앙과 이성을 조화시키려 합니다. 하지만 유명론자들이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습니다.

 

13세기 프란치스코 수도회의 철학자 둔스 스코투스와 14세기 유명론의 선구자인 오컴 출신의 윌리엄이 유명론을 지지하고 나섰습니다. 특히 윌리엄은 온건 실재론을 가리켜 실재론과 유명론의 짜깁기 버전이라며, "온건 실재론자들은 그런 주장으로 기독교를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전혀 도움이 안 된다"라고 말합니다. 차라리 기독교과 철학을 분리하고, 기독교는 기독교대로 믿고, 철학에선 그냥 유명론을 받아들이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것입니다.

 

 

보편 논쟁 정리

보편 논쟁은 그 본질상 중세적인 토양에서 나타난 관념론에 가까운 철학과 유물론에 가까운 철학 사이의 논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동시에 보수적인 사회세력과 진보적인 사회세력 간의 논쟁이 되었습니다. 유명론은 인간 사고 및 사회변동의 발전과 발을 맞추어 진보적인 작용을 하는 반면 실념론은 형이상학적이고 보수적인 세력의 이념으로 정초 됩니다. 봉건제도 및 중세의 스콜라철학이 무너지는 근세에 유명론이 다시 승리하기 시작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개별자가 보편자보다 중시될 때만 경험적이고 구체적인 자연과학이 발전하며 자연과학의 성과를 도외시하지 않을 때만 사회가 진보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되기 때문입니다. 유명론의 주장은 중세 교회의 이념적 기초를 뒤흔들었고, 이 이념에 의존하는 봉건주의를 위협하게 되었기 때문에 교회로부터 이단으로 몰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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