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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철학

테세우스의 배, 변화와 동일성의 문제

by EDMBLACKBOX 2021. 7.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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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에서는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만물이 변하는가, 아니면 변하지 않는가에 관한 오래된 고찰이 있었습니다. 식탁 위에 있는 차가운 얼음은 고체 상태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액체 상태로 변하고 차갑지도 않은 것처럼 만물은 당연히 변합니다. 하지만 고대 그리스 철학자 파르메니데스는 "만물이 변하지 않는다"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왜 그런 주장을 했는지 조금 더 살펴보기로 합시다.

 

 

좌측부터 흑, 백의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 Black or White)

백반증의 마이클 잭슨, 그래도 여전히 마이클 잭슨

마이클 잭슨은 흑인이지만 백반증을 앓아서 나이가 들면서 피부가 하얘지고 성형수술 부작용까지 겪었습니다. 나중에는 얼굴이 흑인인지 백인인지,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를 정도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얼굴과 피부가 변했어도 팝의 제왕 마이클 잭슨은 여전히 마이클 잭슨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변해도 그 사람의 동일성은 변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여기서 사람의 동일성은 왜 변하지 않는 질문을 만들어 볼 수 있습니다. 사람에게는 정신이나 영혼, 혹은 기억 같은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마이클의 정신이나 영혼, 기억 같은 것이 있으니 모습은 변해도 여전히 마이클 잭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뜨거운 녹차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몇 시간 전의 뜨거웠던 녹차가 지금은 미지근해도, 아까의 녹차와 지금의 녹차는 같습니다. 그런데 녹차는 왜 정신이나 혼, 기억이 있는 것도 아닌데 동일성이 변하지 않는 것일까요? 이것을 철학에서는 지속(Persistence)의 문제라고 합니다. 간단히 말해 '개별자가 변화하면서도 어떻게 자신의 동일성을 유지하는가?' 하는 문제인데, 이에 대한 몇 가지 이론을 알아보겠습니다.

 

 

태세우스의 배(Ship of Theseus)

테세우스의 배

고대 그리스 아테네 인들은 영웅 테세우스가 타고 다니던 낡은 배를 오래 보존하고 싶어 했습니다. 낡은 배를 수리하기 시작하여 하루에 하나씩 낡은 널빤지를 새 것으로 교체했습니다. 1,000일이 지나자, 원래의 배에서 새로운 배가 생겼는데 원래 테세우스의 배를 'A 배'라고 하고, 새로운 배를 'B 배'라고 가정합니다.

 

테세우스의 'A 배'와 'B 배'는 동일한 배일까요?

- 우리 몸의 세포는 약 30조 개 정도인데 매일 수십만 개가 죽고 새로운 세포가 생겨납니다. 그런데 아무리 많은 세포가 새로운 세포로 대체되어도, 내가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테세우스의 배는 널빤지가 바뀌어도 여전히 테세우스의 배입니다. 결론은 'A 배'와 'B 배'는 동일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A 배'에서 나온 낡은 널빤지를 버리지 않고 몰래 하나씩 모았고, 1,000일째 되는 날 이것들을 다시 조립해서 'A 배'를 복원했습니다. 이 배를 'C 배'라고 할 때 'A 배'와 'C 배'는 동일한 배일까요?

- 'A 배'와 'C 배'는 동일한 배입니다. 내 책상을 분해해서 옆방에 가서 다시 조립한다면, 이때 원래 책상과 다시 조립한 책상은 부품이 같으니 동일한 책상입니다. 배도 마찬가지입니다. 'A 배'의 널빤지와 'C 배'의 널빤지가 전부 똑같기 때문입니다.

 

'A 배'가 'B, C 배'와 동일하면 'B 배'는 'C 배'와 동일할까요?

- 이건 말이 안 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동일은 '같을 동(同)'에 "한 일(一)', '같으면서 하나'라는 뜻입니다. 영어로는 'one and the same'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B 배'와 'C 배'가 동일하다는 것은 이것이 하나라는 말인데, 하나가 아니라 둘입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요?

 

 

새로운 해법

미지근한 녹차가 한 잔 있다고 가정합니다. 이 녹차는 아까는 뜨거웠는데, '뜨거운 녹차'는 어디로 갔을까요? 뜨거운 녹차는 없어진 것이 아니라 한 시간 전 '거기'에 존재합니다. 이 녹차는 한 시간 후면 차갑게 식습니다. 한 시간 전에는 '차가운 녹차'가 아직 없었는 데 있게 된 것일까요? 차가운 녹차는 없었는 데 있게 된 것이 아니라, 한 시간 후 '거기'에 존재합니다. 즉 이 녹차는 현재에만이 아니라 과거, 현재, 미래에 걸쳐서 존재합니다. 이 녹차의 진면목은 과거 부분, 현재 부분, 미래 부분을 전부 합쳐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다시 테세우스의 배 이야기로 돌아와 봅시다. 배가 'B 배'와 'C 배' 두 척이 있습니다. 하나는 'A 배'에서 'B 배'로 연결되는 부분이 있는 배이고, 다른 하나는 'A 배'에서 'C 배'와 연결되는 부분이 있는 배입니다. 배가 과거와 현재, 미래에 걸쳐서 존재한다고 보면 그렇게 된다는 말입니다.

 

 

변화와 동일성에 대한 3가지 지속 이론

정리해보자면, 'A 배'가 'B 배'와 동일하다는 입장, 이것을 '이동 지속 이론'이라고 합니다. 개별자는 시간을 뚫고 변화를 겪으면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 관념과 비슷하므로 그가 살아 있었다면 아마 '이동 지속 이론'을 지지했을 겁니다.

 

다음으로 'B 배'와 'C 배', 즉 두 척이 있다는 입장이 있는데 이를 '확장 지속 이론'이라고 합니다. 개별자가 일정 시간에 걸쳐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태세우스의 배가 변한 것은 아니고, 인간이 그것을 변화라고 착각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며 파르메니데스가 만약 살아 있다면 아마 이 이론을 지지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모든 배가 다른 배라는 입장입니다. 'A 배', 하루 후, 이틀 후, 사흘 후의 배... 비슷하긴 한데 동일한 배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찰나 지속 이론'이라고 합니다. 헤라클레이토스라면 아마 이 이론을 지지했을 것입니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아인슈타인의 해결

확장 지속 이론에는 결정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녹차의 진짜 모습은 과거와 현재, 미래의 모습을 합한 것이라고 했는데, 지금, 과거의 뜨거운 녹차와 미래의 차가운 녹차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존재하지도 않는 것이 어떻게 존재하는 것의 부분일까 하는 의문이 드는데, 여기서 이 문제를 아인슈타인이 해결합니다.

 

아인슈타인은 상대성이론의 시간 지연 현상을 받아들이면 과거와 현재, 미래의 구분이 의미가 없어진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따라서 뜨거운 녹차도 과거 시점의 '거기'에 존재하고, 차가운 녹차도 미래의 '거기'에 존재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확장 지속 이론이 갖는 결정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고대에 일어난 변화와 동일성의 논쟁이 현대에 들어 물리학의 문제가 되어버렸습니다. 아인슈타인의 생각처럼 오래된 철학적 문제를 과학이 해결해준다는 것은 정말 흥미로운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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