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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철학

멜리소스의 논증과 제논의 역설(Feat. 앙리 베르그송)

by EDMBLACKBOX 2021. 6.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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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은 변하는가?

"만물은 변하는가?"라는 논제는 서양철학에서 오래된 중요한 논란입니다. 헤라클레이토스는 만물은 변한다고 하였고, 파르메니데스는 만물은 변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파르메니데스에게는 두 명의 제자가 있었는데, 바로 사모스의 멜리소스와 엘레아의 제논입니다. 둘은 스승의 '만물은 변하지 않는다'라는 주장을 증명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멜리소스(Melissus)

멜리소스는 누구인가?

멜리소스는 엘레아의 제논과 파르메니데스가 포함되어 있는 고대 그리스 엘레아학파의 세 번째이자 마지막 일원입니다. 그가 펠로폰네소스 전쟁 전 짧은 기간 동안 사모스 섬 함대의 장군이었다는 사실 이외에 멜리소스의 생애에 대해서 알려진 것은 거의 없습니다. 멜리소스가 철학에 대해 기여한 것은 엘레아학파의 철학을 지지하는 체계화된 주장을 실은 논문을 작성한 것입니다. 파르메니데스와 같이 멜리소스도 실제는 생성되지 않으며, 파괴되지도 않고, 나뉘지도 않으며, 변화하지도 않고, 운동하지도 않는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여기에 존재에는 한계가 없으므로 실제에도 한계가 없으며, 무한히 확장된다는 것을 보이려 노력하였습니다.

 

 

멜리소스의 논증

멜리소스는 '만물이 변하지 않는다'라는 것을 증명하려고 하였습니다. 그의 논증을 대략 살펴보겠습니다. 어떤 사물이 변했다고 할 수 있으려면, 변화 이전의 사물과 이후의 사물이 '동일한' 것이어야 합니다. 어린 시절 마이클 잭슨이 성인 시절 마이클 잭슨으로 변했다고 할 수 있지만, 성인 시절 타이슨으로 변했다고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전자는 동일한 사람이지만, 후자는 같은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변화는 변화 이전의 사물과 이후의 사물을 다른 것으로 만들어버립니다. 변화는 속성이 달라지는 것을 뜻하는데, 어린 시절 마이클 잭슨은 어린이 속성을 가지고 있고, 성인 시절 마이클 잭슨은 어른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속성이 다르니까 동일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변화는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멜리소스의 논증을 정리하면, 변화는 동일성을 전제로 하는데, 변화하면 동일하다고 말할 수 없으므로 변화는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엘레아의 제논(Zeno of Elea)

엘레아의 제논이란 누구인가?

엘레아의 제논은 소크라테스 이전 시대 마그나 그라이키아의 철학자이며, 파르메니데스에 의해 만들어진 엘레아학파의 학자입니다. 이탈리아의 엘레아에서 태어났고, 불생불멸의 유일한 실재를 인정하였으며, '운동 불가능론'을 주장하였습니다. 이것은 파르메니데스를 옹호하는 입장에서 제논이 나눌 수 없으며, 영원하고 사라지지 않는 존재인 일자(一者)를 증명하기 위해 내놓은 것입니다. 그에 따르면 일자가 아니라 구별 가능한 성질과 운동이 가능한 사물들을 일컫는 다자(多者)를 믿는 것은 논리적으로 자기모순에 빠지게 됩니다. 그는 파르메니데스가 발전시킨 고도의 추상화와 분석적 기법을 이용하였습니다. 또한 반대자들의 논리에서 출발하여 스스로 자가당착에 빠지도록 하였습니다. 그와 논쟁했던 상대는 아마 피타고라스 학파로 추정되는데, 자세히 밝혀지지는 않았습니다. 엘레아의 제논이라고 하여 스토아학파의 개조인 제논과 구별됩니다.

 

 

제논의 역설

제논은 운동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4개의 역설을 내세웁니다. '운동이 가능하다'면 4가지 역설이 생긴다는 것을 논증하고, '운동은 불가능하다'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제논의 첫 번째 역설, 아킬레우스와 거북의 역설

그리스의 영웅 아킬레우스와 거북이가 달리기를 한다고 가정합시다. 아킬레우스는 거북보다 10배가 빠르기에, 거북이는 아킬레우스보다 100미터 앞에서 출발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달리기 시합을 시작한 후 아킬레우스는 거북이가 있던 자리인 100미터 앞으로 가면, 거북이는 이미 10미터 앞에 가 있을 겁니다. 아킬레우스가 다시 10미터를 가면, 거북이는 1미터 앞에 있을 겁니다. 아킬레우스가 더 달려서 1미터를 가면 거북이는 0.1미터 앞에 가 있을 겁니다. 아킬레우스가 거북이가 있는 자리까지 가면 언제나 거북이는 더 앞에 가 있으니, 아킬레우스는 거북이를 따라잡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제논은 아킬레우스와 거북이의 역설을 통하여 운동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제논의 두 번째 역설, 이분법의 역설

육상 선수가 100미터 달리기를 한다고 가정합니다. 결승점까지 가려면 2분의 1 지점을 통과해야 합니다. 거기서 다시 결승점까지 가려면 2분의 1 지점을 지나야 하고, 거기서 또 2분의 1 지점을 통과해야 합니다. 즉 육상 선수가 결승점에 도달하려면 무한한 지점을 통과해야 하고, 결승점에 점점 가까이 갈 수는 있지만 도달하지는 못한다는 주장입니다. 제논은 이러한 이분법의 역설을 통하여 운동이 실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편 것입니다.

 

제논의 세 번째 역설, 나는 화살의 역설

화살이 날아가는 순간을 살펴보면, '그 순간'에 화살은 멈춰 있습니다. '다음 순간'을 살펴봐도 '다음 순간'에도 화살은 멈춰 있습니다. 화살은 모든 순간마다 멈춰 있습니다. 화살이 날아가는 시간은 순간들로 이루어져 있고, 순간들이 모여서 시간이 됩니다. 이처럼 시간은 화살이 멈춰 있는 순간들로 구성되어 있기에, 나는 화살은 날 수 없다는 주장입니다. 제논의 '나는 화살의 역설'을 통하여 변화와 운동이 불가능함을 논증하려 한 것입니다.

 

제논의 네 번째 역설, 기차역의 역설

기차역에 1번, 2번, 3번 기차가 정지해 있다고 가정합니다. 이때 가운데 있는 2번 기차는 고장이 나서 계속 정지해 있고, 1번 기차는 오른쪽으로, 3번 기차는 왼쪽으로 똑같은 속도로 움직이고 있다고 합니다. 세 기차가 일직선이 되는 순간을 살펴보면, 처음과 비교했을 때 1번 기차와 2번 기차의 위치는 한 량 길이만큼 차이가 나고, 1번 기차와 3번 기차는 2량 길이만큼 차이가 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 기차가 일직선상에 있게 된 것을 보면, 한 량이 움직인 시간과 2량이 움직인 시간이 같다고 봐야 합니다. 어떤 시간과 그 시간의 2배가 되는 시간이 같은 것입니다.

 

제논은 이러한 4가지 역설을 통하여 '운동이 가능하다'면 이런 모순이 발생하므로, 결론적으로 '운동은 불가능하다'라고 결론을 내립니다. 그런데 우리와 같이 대부분의 사람들은 운동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육상 선수가 달리고, 자동차와 비행기가 연료에 의해 움직입니다. 제논은 운동이 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감각 자료가 주는 경험이 우리로 하여금 착각을 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성의 눈으로 꿰뚫어 보면 운동이 불가능한 것임을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제논의 역설에 반박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해법

아리스토텔레스는 제논의 역설에 대하여 반론하였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 식으로 아킬레우스와 거북의 역설, 이분법의 역설의 요지를 정리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정리한 제논의 논리

1. 아킬레우스가 거북을 따라잡기 위해서, 또는 육상 선수가 결승점에 도달하기 위해서 지나가야 하는 공간을 무한하게 분할한다.

2. 그런데 운동에 걸리는 시간은 유한하다.

3. 유한한 시간에 무한한 공간을 지나가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그래서 운동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린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여기서 2번의 논제를 공격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공간을 무한하게 분할할 수 있다면 시간도 무한히 분할할 수 있습니다. 공간이 무한하게 짧아진다면, 그러한 공간을 지나가는 데 필요한 시간도 무한하게 짧아진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제논이 주장한 역설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다음은 '나는 화살의 역설'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해법을 살펴보겠습니다. 불경에 찰나(刹那)라는 말이 있습니다. 대략 75분의 1초를 뜻하는데, 그러면 순간은 찰나보다 긴 것인지, 짧은 것인지 의문입니다. 순간은 찰나보다 길지도 짧지도 않습니다. 찰나는 시간적 길이를 갖지만, 순간은 시간적 길이가 없기 때문입니다. '현재 이 순간'의 시간적 길이가 얼마인가를 살펴보면 몇 초인지, 몇 분인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저 '현재 이 순간'은 과거의 미래와 경계일 뿐입니다. 그래서 순간들을 아무리 모아봐야 시간이 되지 않습니다. 즉, 시간을 순간들로 쪼갤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논은 시간을 순간들로 쪼개고, "한순간만 보면 화살은 정지해 있는 것이다"라며 운동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앙리 베르그송(Henri Louis Bergson)

앙리 베르그송이란 누구인가?

앙리 베르그송이란 프랑스 파리 출생으로 1927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이며,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입니다. 고등사범학교 출신으로 콜레쥬 드 프랑스에서 그리스-로마 철학을 강의했습니다. 폴란드계 유대인인 아버지와 아일랜드계 유대인인 어머니 사이에서 4남 3녀 중 둘째로,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베르그송의 철학은 지속, 의식, 그리고 생명의 문제에 천착하는 경향을 보이는데, 그의 대부분 저작에서 이와 같은 문제들이 논의의 중심에 놓입니다. 그의 철학은 선험적인(a priori) 그리고 논리적인 체계를 구축하려 하기보다는 한편으로는 동시대 자연과학의 실증적 성과들을 수용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경험과 직관에 기반을 둔다는 점에서 전통적인 형이상학과는 구분되는 면이 있습니다.

 

 

베르그송의 반론

프랑스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1859~1941)의 반론은 좀 더 포괄적입니다. 베르그송에 따르면, 시간은 공간과 달리 더하거나 빼고 나누거나 정지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그냥 흐르는 것, 그냥 지속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아킬레우스가 거북이가 있는 지점에 도착한 순간을 정지시킬 수 없고, 육상 선수가 절반을 지나는 순간, 나는 화살, 기차도 정지시킬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제논은 시간을 정지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제논의 역설'을 통하여 운동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드는 의문은 "우리는 왜 시간을 정지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인가?"입니다. 그 이유는 시간을 공간처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운동이 불가능하다"는 멜리소스나 제논의 주장은 어찌 보면 조금 황당하고 합리적이지 않지만, 어찌 되었든 논리적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단순 말장난으로 치부할 수는 없습니다. 이들의 주장이 어떤 부분이 잘못되었는지 따져 들어가면 새로운 생각들을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멜리소스의 논증을 검토하며 '변화가 무엇인지, 동일성이 무엇인지'에 대한 새로운 생각들을 해볼 수 있었습니다. 철학자들은 제논의 역설을 검토하며 '시간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얻기도 했습니다. 멜리소스와 제논은 생각할 거리가 아주 풍부한 철학적 논의를 이끌어냈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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