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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세계사

강력한 해양 제국, 포르투갈

by EDMBLACKBOX 2021. 9.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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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 제국 국기

지중해의 변방인 이베리아 반도의 작은 나라 포르투갈이 해양 강국이 된 데는 항해왕자라고 일컬어지는 엔히크의 노력이 있습니다. 나중에 마젤란이 대서양과 태평양을 두루 거쳐 세계를 한 바퀴 돈 것도 엔히크가 닦아 놓은 기반 때문입니다. 포르투갈 국왕 후안 1세는 1300년대 국경 분쟁에서 에스파냐를 물리치고 평화로운 시대를 열었습니다. 엔히크는 그의 아들입니다. 엔히크 왕자의 머릿속은 온통 항해에 관한 것으로 가득 차 있었기에 각지에 항해 학교, 천문대, 도서관, 항구, 조선소를 세우며 해양 강국을 향한 꿈을 불태웠습니다. 인프라가 잘 갖추어지자 유럽 각지의 고급 항해사들과 기술자들이 포르투갈로 몰려왔습니다. 선박은 장거리 항해에 적합하게 개량되고 발전되었습니다.

 

 

구 포르투갈 식민 제국의 거대한 판

헤게모니를 쥘 수 있었던 포르투갈의 역사

포르투갈은 1415년 북아프리카의 항구 세우타를 점령했습니다. 포르투갈이 세우타를 노렸던 것은 그곳이 아시아에서 오는 향신료의 유통 중심지였고, 적대적인 이슬람 도시였기 때문입니다. 포르투갈은 교황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었습니다. 새로운 세계에 가톨릭을 전파한다는 사명과 일치했기 때문입니다. 1455년에 교황은 서아프리카의 이교도를 정벌한 공로를 치하하며 포르투갈이 해안 지역을 독점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했습니다. 포르투갈은 1463년에 카사블랑카를 점령했습니다. 1487년에는 바르톨로뮤 디아스가 희망봉을 발견했는데, 인도로 갈 수 있는 희망을 연 곳이라 하여 그런 이름이 붙었습니다. 그 꿈은 1498년에 바스쿠 다가마가 인도로 가는 항로를 개척함으로써 실현되었습니다.

 

포르투갈은 이베리아 반도의 경쟁자 에스파냐와 매번 충돌했습니다. 교황청은 이 두 해양 강국의 충돌을 중재하려고 1494년 에스파냐의 작은 도시 토르데시야스에서 협약을 하나 주선했습니다. 에스파냐와 포르투갈 사이의 이권 합의 조약의 내용은 지구를 세로로 양분하여 한쪽은 에스파냐에 다른 한쪽은 포르투갈에 할당하겠다는 것입니다. 교황이 심판을 맡은 라이벌의 지구 쟁탈전이 시작되었습니다. 두 나라를 제외한 나라들이 보면 기가 찰 일이었습니다. 경도를 정확하게 측정하는 도구인 크로노미터가 개발되어 실제 사용된 것은 1700년대에 들어서야 가능했으니 이 조약이 체결될 당시에는 그저 대략적인 기준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1502년 알베르토 칸티노가 제작한 지도에는 이른바 '교황 자오선'이 표시되어 있습니다. 자오선(Meridian)은 북극과 남극을 잇는 경도의 기준이 되는 세로선입니다. 당시 지도상에 수직으로 늘어서 있는 아로레스 섬과 까보 베르데 섬을 통과하는 선을 긋고, 이 선을 기준으로 서쪽으로 100 레구아(약 600킬로미터) 떨어진 공해상에 경계선을 그었는데, 포르투갈의 항의로 370 레구아 떨어진 지점으로 기준선이 조정되었습니다. 다른 나라들이 반발한 것은 당연합니다. 프랑스의 프랑수아 1세는 실질 지배만이 해당 영토에 대한 유일한 권리 증명이라고 선언하며 독자적으로 식민지를 개척했습니다.

 

 

에스파냐에 밀리고... 네덜란드에 패배하고

1494년 이래 포르투갈은 서류상 세상의 반을 가진 해양 제국이 되었습니다. 1500년에 알바르스 카브랄은 표류하다가 브라질 지역을 발견했습니다. 아메리카 대륙 개척에서 포르투갈은 에스파냐에게 주도권을 뺏기긴 했으나 자국 영토 면적의 100배에 달하는 광대한 땅 브라질을 획득했습니다. 브라질이 포르투갈어를 사용하게 된 것도 이 때문입니다. 제국의 시대로 접어든 포르투갈의 역사는 1580년 에스파냐에 다시 병합되는 위기를 겪긴 했으나 아프리카와 아시아 등지에서 여전히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했습니다. 인도, 말라카, 마카오를 상업 거점으로 구축했고 중국과 무역을 독점했습니다. 그렇지만 육두구와 정향 같은 귀한 향신료가 많이 생산되던 인도네시아를 두고 네덜란드와 이른바 '향료 전쟁'을 벌였다가 대패하였습니다. 육두구는 유럽에서 흑사병을 치료하는 유일한 열매라고 알려지면서 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았습니다. 인도네시아와 필리핀과 뉴기니 지역을 일컫는 몰루카 제도에만 이 식물이 자랐기 때문에 해상 강국들은 이 지역을 차지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육두구를 독점하려는 포르투갈의 시도는 대실패로 끝나고 인도네시아는 그 후 350년간 네덜란드의 식민지가 되었습니다.

 

1415년 이슬람 사람들의 항구 세우타를 점령한 사건은 단지 포르투갈의 역사에 그치지 않고, 대부분 역사서에서 세계주의 혹은 상업 식민주의가 시작된 기원으로 기술됩니다. 유럽의 세계 지배 시대를 개척했고 한때 세상의 반을 가졌던 해상 제국 포르투갈은 21세기 세계에서 심각한 부채로 세계 경제를 위협하는 유럽 국가들을 조롱하여 일컫는 표현인 '돼지 국가들(PIGS : 포르투갈,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에 포함되었습니다. 끈질긴 라이벌인 에스파냐(스페인)와는 여기서도 경합을 벌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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