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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세계사

모든 학문이 탄생한 그리스 시대

by EDMBLACKBOX 2021. 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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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의 뜻을 사전적 뜻을 살펴본다면 어떤 분야를 체계적으로 배워서 익힘. 또는 그런 지식 의미합니다.
어찌 보면 기원전 7세기에 살았던 철학의 아버지, 탈레스가 "만물의 근원은 물이다"라고 선언한 때부터 학문의 전진이 시작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스의 학자들이 탐구한 주제를 이미 이집트 사람들을 비롯해 이전 시대 사람들이 제기했음에도 그리스가 학문의 진정한 탄생지인 이유는 모든 것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학문 풍토를 이루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탈레스는 신화적 사고에서 벗어나 자연을 있는 그대로인 물질로 파악하고자 했습니다. 아낙시만드로스는 근본 물질이 있다면 그건 한계가 없는 것, 즉 '무한정자'라고 주장했고, 아낙시메네스는 근본 물질이 뭔지 탐구하기보단 농축과 분산이라는 물질의 결합 원리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역사(신화)와 사물에 대한 그리스인들의 태도

신화적 역사를 사실적 역사로 전환하는 일은 '헤로도토스와 '투키디데스'가 맡았습니다. 헤로도토스가 신화와 결별했음에도 여전히 신적인 원인으로 역사를 서술했지만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지은 투키디데스는 훨씬 세심하고 객관적인 역사 서술의 지평을 열었습니다. 헤로도토스가 역사의 아버지라면 투키디데스는 '역사학'의 아버지인 셈입니다. 피타고라스 학파는 수학이 우주의 모습을 보여주는 통로라고 여겼습니다.

파르메니데스가 변치 않는 존재만 진짜라는 주장을 펼쳤지만, 헤라클레이토스는 변치 않는 건 모든 게 변한다는 사실 뿐이라고 반박했습니다. 우리의 눈앞에 펼쳐지는 현상은 파르메니데스에게는 허상일 뿐이었지만 헤라클레이토스는 탐구 대상이었습니다. 파르메니데스의 형이상학적 태도는 제자인 제논에 이르러 극단으로 치우쳤습니다. 그는 시공간의 변화하는 관념이 완전히 무의미하다고 선언했습니다. "과녁에 쏜 화살은 논리상 남은 거리의 반만큼만 무한히 이동하므로 과녁에 맞지 않는다"라는 역설은 단순한 궤변이라기보다 시간과 공간이라는 제약에서 완전히 벗어난 형이상학적 세계를 향한 상상이라고 보기도 합니다.

좌측부터 파르메니데스와 헤라클레이토스

 

오늘날까지 여전히 유효한 윤리학 체계

불변하는 존재를 향한 파르메니데스의 철학은 소크라테스를 거쳐 플라톤으로 전수되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인간의 보편적 본성에 관해 궁리함으로써 윤리학이 성립할 수 있는 배경을 제공했습니다. 델포이 신전에 새겨진 "너 자신을 알라"라는 문구를 자주 인용했던 소크라테스는 플라톤의 저작에 서술자로 등장합니다. 정치철학에서 다루어지는 모든 사례를 대화 형식으로 제시하는데, 이후 이탈리아 학자 니콜로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에서 "정치와 도덕은 무관하다"라고 선언하기 전까지 고대 정치학의 대원칙을 제공했으며 그 일부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소크라테스와 동시대를 산 소피스테스(소피스트)들은 현대로 치면 자기 계발 전문 강사들로서 실용 학문의 원조라고 불립니다. '인간의 경험이 만물의 척도'라고 말한 소피스트 프로타고라스는 보편적인 가치관을 부정함으로써 후에 공리주의 같은 상대론적 윤리설이 나올 수 있는 사상적 기틀을 제공해 주었습니다.

좌측부터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자연학과 인문학의 위대한 발전, 그리스 시대

히포크라테스는 "의술의 길은 멀지만, 인생은 짧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그는 일생을 유한한 인간의 생명을 다루면서도 세대를 뛰어넘는 의술을 고안하고 싶어 했습니다. "모든 질병에는 원인이 있다"라는 명언을 남기며 이후 많은 의사와 과학자들에게 영감을 주기도 했습니다.

물, 불, 공기 그리고 흙이 물질을 구성하는 4요소라고 봤던 엠페도클레스와 세상에는 다양한 원소가 존재한다고 생각했던 아낙사고라스는 세상이 한 가지 원리나 물질에 의해서만 움직이고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 '다원론자'들이었습니다. 그 전통 위에 서 있는 레우키포스와 데모크리토스는 물질을 쪼개고 또 쪼개면 결국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원자만 남게 되는데 이것이 모든 사물의 근원이라고 추정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철학적 배경은 현대 물리학의 시조가 되었습니다.

좌측부터 히포크라테스와 레우키포스

 

그리스라는 위대한 학문 씨앗

동식물학자이면서 형이상학자였던 아리스토텔레스는 수학을 제외한 논리학, 형이상학, 자연학, 윤리학, 경제학, 정치학, 수사학, 시학 등 거의 모든 학문 분야의 체계 세웠습니다. 이러한 아리스토텔레스의 흔적은 추후 유럽의 교육 커리큘럼을 장악하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문학사의 첫 장을 장식하고 있는 호메로스, 에우리피데스, 소포클레스, 아이스퀼로스 같은 시인과 극작가들을 배출한 곳도 고대 그리스입니다. 이 모든 지적 활동이 불과 2~3백 년 동안 고대 그리스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리스인들이 창안하고 발전시킨 학문 영역은 앞선 시대 사람들이 이미 구상했던 것이지만 그리스인들은 구상 단계에 머물던 지식을 구체적인 지식으로 전환하였습니다. 물론 그리스 수학 이전에도 고대인들은 이미 3:4:5와 같은 비율을 지닌 삼각형에 직각이 생긴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다만, 과거 모든 사례를 체계화하여 a2 + b2 = c2라는 공식을 만들어낸 것은 그리스 수학의 업적이라고 볼 수 있으며 다른 학문 분야도 현대인들은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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