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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세계사

마야 문명과 옥수수

by EDMBLACKBOX 2021. 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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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야 문명은 기원전 1500년 무렵 발흥하여 1500년대 중반까지 존속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마야가 소설이나 영화의 소재로 활용되는 이유는 아마도 마야 달력 때문일 겁니다. 할리우드에서 제작한 각종 재난 영화들의 종말론은 마야 달력에 근거를 둔 것인데, 마야 달력을 현재 우리가 쓰는 달력으로 변환해 보면 2012년 12월 21일 또는 23일경에 시간이 끝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철저히 현실 지향적이었던 마야인들의 세계관에 비추어 보건대 어떤 의도를 갖고 종말 시점을 적은 건 아니었으며 수천 년 뒤의 일까지 관여할 능력이 있을지도 의문입니다.

마야 달력, 출처 : Time and Date

 

마야 문화에 대한 진실

1562년 유카탄 반도의 가톨릭 주교로 임명된 디에고 데 란다의 임무는 원주민을 가톨릭교도로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란다 주교는 마야 문자를 주시했습니다. 문자에는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혼이 깃들어 있으니 이를 모두 없애버려야 한다고 여겼기에 마야 문헌을 닥치는 대로 불살라 없애버렸습니다. 마야 관련 문헌이 사본만 겨우 4권 현존하는 건 아마 그 때문일 겁니다. 그러니 우리가 전해 들은 마야 관련 지식은 대부분 유럽인의 관점에서 선택되고 걸러진 것이라고 볼 수 있고, 마야라는 이름 역시 에스파냐인들이 붙인 것입니다.

고대 마야인들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신전, 출처 : 위키피디아

 

마야의 옥수수 신인 '운날예'는 그들에게 가장 신성한 존재중 하나였습니다. 마야의 성스러운 문헌인 '포폴 부'에는 신이 흙과 나무로 인간을 만들었다가 온전하지 못하여 옥수수 가루로 다시 인간을 빚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마야인에게 옥수수는 신성한 음식이었습니다. 신성한 주식인 옥수수 잎 위에서 아기의 탯줄을 잘랐고 그 옥수수의 낟알을 파종했습니다. 어여쁜 소녀의 머리칼을 옥수수 잎에 빗대 표현했으며, 결혼 적령기에 도달한 성숙한 청춘 남녀를 '꽃이 핀 옥수수 꽁지' 같다고 표현했습니다.

장례에는 옥수수 부침과 옥수수 술을 마련했습니다. 옥수수는 마야였고 마야 문명은 옥수수를 중심으로 커져갔습니다. 인간에게 불을 전해준 서구의 프로메테우스 신화처럼 아스테카 신화에 등장하는 신 케찰코아틀도 옥수수를 인간에게 전해준 존재로 묘사됩니다. 옥수수를 보면 유카탄 반도에 기반을 둔 마야와 후대 문명인 아스테카(아즈텍)의 동질성과 연속성이 드러나기도 합니다.

아즈텍 문명의 신전, 출처 : 위키피디아

작물 다양화의 중요성, 그리고 마야 문명

테오신테라는 야생 식물에서 개량된 옥수수가 식용으로 처음 재배된 것은 지금부터 3천 년 전쯤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옥수수는 저지대에서 고산지대에 걸쳐 어디서든 잘 자라는 식물입니다. 심어 놓고 기다리기만 하면 되고 농부 한 명이 한두 달만 일해도 4인 가족이 먹을 만큼의 옥수수를 생산할 수 있습니다. 고대 마야 왕국의 인구가 급증한 시기는 옥수수 생산량의 증가 시기와 일치합니다.

갑자기 찾아온 마야의 몰락 역시 옥수수 생산량의 급감 시기와 맞아떨어집니다. 경작하기 쉽고 수확량도 많은 옥수수의 장점은 결국 생산 다양성과 농업 기술 진보를 가로막는 요인으로 작용했으며 마야를 멸망시키는 독이 되고 말았습니다. 화전 방식으로 옥수수 농사를 지은 것도 몰락의 원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밭을 태워 땅을 기름지게 만드는 화전은 복구 시간이 오래 걸리는 비효율적 농사법이기 때문입니다.

한 작가가 만든 옥수수 신 작품, 출처 :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마야의 후예들

마야의 후예인 멕시코를 비롯해 비옥하고 광대한 토지를 보유한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은 충분히 자급자족이 가능한 조건을 두고도 외국에서 식량을 수입하는 데 매년 5억 달러를 지출하는 이유는 바로 식량 주권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그 대표적인 국가인 멕시코는 2002년도에 충격에 휩싸인 적이 있습니다. 곡물 회사 디콘사(Diconsa)가 국내에 판매하던 자사의 옥수수가 미국에서 수입한 유전자 조작 농산물이라고 밝혔기 때문입니다.

옥수수 종주국 멕시코는 이미 1998년을 기점으로 유전자 변형 옥수수에 의해 점령당했던 것입니다. 옥수수 문명을 꽃피웠던 멕시코는 한 해 500만 톤에 달하는 옥수수를 수입하고 있으며 그 대부분은 유전자 조작 옥수수입니다.

마야 사람들은 사랑한다는 뜻을 전달할 때 '야일(yail)'이라고 말하는데, 고통스럽다는 뜻을 표현할 때도 똑같이 이 말을 사용합니다. 그리스의 신 에로스가 풍요의 신이기도 하지만 결핍의 신이기도 한 것처럼 말입니다. 고대 마야인에게 풍요의 상징이던 옥수수가 역설적으로 현대 마야인에게 억압의 상징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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