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역사/세계사

메소포타미아 문명 : 함무라비의 영향력

by EDMBLACKBOX 2021. 2. 3.
반응형

메소포타미아는 '강 사이에'라는 뜻으로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사이 지역을 가리킵니다. 수메르는 메소포타미아의 중심 문명을 이루었던 남부 지역을 가리킵니다. 기원전 3천 년에서 2천 년 사이에 지어졌다고 하는 '길가메시 서사시'는 수메르 시대의 사고와 생활상을 보여주는 희귀한 내용으로 19세기 고고학자들이 발굴한 기록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메소포타미아의 도시국가 우룩을 다스린 왕 길가메시의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생명, 죽음, 사랑, 투쟁 등 다양한 인간의 본질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길가메시의 행적을 알린다. 그는 모든 것을 알았고 세상 모든 나라를 알았던 왕이다. 슬기로웠으며, 신비로운 사실을 봤고, 신들만 알던 비밀을 알아냈고, 홍수 이전에 있던 세상에 대해 알려 주었다. 그는 긴 여행 끝에 피곤하고 힘든 일에 지쳐 돌아와 쉬는 중에 이 모든 이야기를 돌 위에 새겼다."

 

외치와 내치를 구분한 함무라비 왕

고대의 문자 기록은 실제 사건의 유적이든, 문학적으로 표현된 자료이든 모두 중요합니다. 당시 살던 사람들의 생각을 반영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빌론 왕 함무라비(재위 : 기원전 1792년~1750년)는 수메르의 습속과 사회 규범을 면밀히 검토해 나중에 강력하고 철저한 법률을 만듭니다. 함무라비는 통치술과 외교력을 발휘해 여러 민족으로 이루어진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여러 도시국가를 차례로 정복했습니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세계 4대 문명 발상지 중 하나로 비옥한 농경지를 소유하고 있었지만, 평야 지대라 경쟁 관계에 있는 인근 도시국가는 물론 외곽의 산악 지대나 강 상류의 강대한 세력이 빈번하게 침략해 오곤 했습니다. 수십 개 도시국가가 두 강 사이의 평야 지대에 높다란 성벽을 쌓고 도시국가를 건설해 경쟁을 하곤 했습니다.

중동판 전국시대라 불리는 이 시기에 바빌론의 왕 함무라비는 먼저 북쪽의 강력한 경쟁자인 아시리아와 우호 관계를 맺은 뒤 자기 지배 아래 있는 여러 도시국가의 성벽을 구축하고 보강하는 데 온 힘을 기울였습니다. 운하를 새로 만들고 보수해 농업 생산을 높이고 각 도시의 인구를 늘려 나갔습니다. 당시는 농업 생산과 인구가 바로 국력이기도 했습니다. 왕은 치세의 전기와 중기 30년을 내치와 국력 신장에 집중했고, 즉위 30년이 되던 해에 함무라비는 남방의 숙적 라르사를 향해 전쟁을 펼쳤습니다. 함무라비가 라르사를 격파하자 수메르 지역의 여러 도시국가들이 다투어 그의 지배 아래 들어왔습니다. 행운도 물론 따랐지만, 동맹을 맺었던 아시리아의 왕이 갑자기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결국 아시리아를 무혈 합병하고 왕은 여세를 몰아서 즉위한 지 39년 만에 전 메소포타미아를 통일하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함무라비 왕

 

'엄격하고 냉정했던 법률 그 자체' 함무라비 법전

함무라비는 나라의 번영과 안정성을 위해 정교하고 영향력 있는 법률을 만들어나갔습니다. "정의를 온 나라에 빛나게 하기 위해, 나쁜 자를 멸망시키기 위해, 강자가 약자를 억누르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과부와 고아가 먹을 것이 부족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평민이 악덕 관리에게 해를 입지 않도록 하기 위해" 등 왕이 아닌 법률이 백성을 지켜줄 것이라고 호언장담을 하였습니다. 총 282조로 구성된 '함무라비 법전' 가운데 유명한 조항들만 살펴보겠습니다.

제22조 : 강도질을 한 사람이 붙잡혔다면 그 사람은 죽여야 한다.
제195조 : 아들이 자기 아버지를 때리면 그 손을 자른다.
제196조 : 남의 눈을 멀게 하면 가해자의 눈도 멀게 만든다.
제198조 : 평민의 눈을 멀게 하거나 뼈를 부러뜨리면 은 1마나를 지불해야 한다.
제199조 : 노예의 눈을 멀게 하거나 뼈를 부러뜨리면 은 2분의 1마나를 지불해야 한다.

함무라비 법전의 비문, 출처 : 위키페디아

'함무라비 법전'은 위의 내용과 같이 신분에 따른 차별 규정이 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신분에 따른 차별 규정인데, 법전은 왕국 안의 계급 사회라는 현실을 받아들여 계급에 따른 차별 규정을 뒀습니다. 같은 죄를 범해도 범죄자의 신분에 따라 그 형벌을 다르게 했던 것입니다. 오늘날 통념으로는 매우 불평등하고 불합리하다고 볼 수 있지만 그 시기, 그 시대의 계급 사회에서는 아주 공평한 처벌이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해를 입은 만큼 복수를 한다는 것은 얄짤없이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맥락과 비슷한 의미입니다. 복수법이라고 해서 마냥 폭력적이고 악법처럼 볼 필요도 없습니다. 규정에 따른 복수는 잔인하게 서로를 죽이는 것을 막는 효과를 거두기도 했습니다. '함무라비 법전'은 세계 최초 성문법으로서 역사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법전은 여러 경우에 사형이나 사지 절단과 같은 가혹한 처벌도 있었으며 그와 동시에 무죄 추정 원칙과 증거주의 등 현대 법체계에서 그대로 채택하는 원칙도 이미 반영시키고 있었습니다.

함무라비 법전 출처 : History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