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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세계사

선사시대의 특징 : 생산력 증가

by EDMBLACKBOX 2021. 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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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 시대는 식량이 풍족해진 시기뿐만 아니라 모든 풍요가 싹튼 시기입니다.

생산력이 급격히 증가할 때 인류 역사는 급격한 발전과 변화를 겼습니다. 생산력 증대는 생산물의 잉여를 낳습니다. 처음으로 먹을 게 남아돌던 시대가 바로 이 선사시대 때부터 입니다. 신석기인 농경을 위해서 정착 생활을 하면서 사상 처음으로 생존에 필요한 양보다 더 많은 것을 생산하게 된 것입니다. 잉여 생산물을 다른 부족과 교환하는 과정에서 시장과 가격 개념이 등장하였고 교환하기 위해서 잉여 생산물을 담을 별도의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바구니 직조술, 토기 제조술이 발전하였고 수분이 포함된 식재료를 담아두거나 옮기는 데에 토기가 사용됐습니다. 토기는 큰 충격을 이길 수 없기 때문에 식량을 멀리 운반하려면 더 단단한 그릇이 필요했습니다. 진흙을 센 불로 오래 달구면 수분은 날아가고 단단한 인공 돌이 된다는 사실을 바로 신석기인들이 발견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서울 암사동 주거지에서 출토한 빗살무늬토기, 출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잉여 생산물이 불러 일으킨 사회 변화

생산 과정에서 노동력이 얼마나 들어갔는지 비교하면 생산물에 가격을 매길 수 있습니다. 카를 마르크스도 '자본론'에서 규정한 상품의 '가치' 개념이 바로 이것입니다. 예를 들면 감자 한 포대를 생산하는 데 들이는 노력보다 쌀 포대를 생산하는 데 들이는 노력이 두 배 정도 되기 때문에 시장에서는 감자 두 포대와 쌀 한 포대가 교환됩니다. 먼 훗날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에서 만개하는 화폐 경제의 서막이 이때부터 싹을 틔우기 시작한 것입니다. 잉여는 교환을 낳고 교환은 경쟁을 낳습니다. 생산자의 일부는 생산하는 일을 더 이상 하지 않고 생산물을 다른 곳에 전달하는 역할을 전문으로 맡게 되었습니다. 유통업자가 출현함으로써 역사에서 처음으로 생산과 유통이 분리됐습니다. 유통이 전문 분야로 자리 잡고 마을 사이의 교역량이 늘어나자 생산 분야는 더욱 정교해졌고 여기서 전문 직공, 도공, 석공 등이 등장하게 됩니다. 생산의 전문화란 작업의 분업화를 말합니다.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의 서두에서 분업을 자본주의의 지탱 원리라고 말했는데 아마 이때 처음 시작된 것으로 보입니다.

다른 생산물에 비해 먹을거리는 시간이 지나면 쉽게 썩는 골치아픈 단점을 지는 상품입니다. 식량을 오래 보존하는 것은 하루하루 생존하는 것에 급급했던 원시인의 본능이었고 시장에 출현한 진화한 인류가 풀어야 할 어려운 과제이기도 했습니다. 다른 식량을 제치고 곡류가 인간의 주식이 된 중요한 이유는 채소나 고기 같은 다른 식량보다 더 오래 보존할 수 있고 언제든지 시장에서 다른 물건과 바꿀 수 있는 장점을 지녔기 때문이지만 곡류만 먹고 생산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들은 고기를 오래 보존할 수 있는 방법을 궁리했고 고기를 썩히지 않고 신선한 상태로 가장 오래 보존할 수 있는 방법을 계속하여 연구했습니다. 신석기시대에 들어서 드디어 가장 쉽고 간단한 답, 살려 두면 된다는 것을 찾았습니다. 신석기인은 야생 동물을 길들이는 방법을 그때서야 찾아낸 것입니다.

각종 조개 화폐, 출처 : 국립중앙박물관

구성원 간의 새로운 체계가 도래한 신석기

생산 분야의 준문화, 유통 질서의 형성, 재화 재분배 과정에서 계급이 형성되기 시작했습니다. 생산 수단의 소유 여부에 따라 강자와 약자의 도구가 재편되었습니다. 신석기인들이 처음으로 빼앗거나 지킬 가치가 있는 부를 산출했다는 말이기도 한데, 교역과 유통에서 발생한 갈등은 때로 합리적으로 해결되지 않고 무력 행사나 약탈로 끝나기도 했습니다. 기원전 7350년경 인구 2천 명이 자급자족하는 부유한 도시였던 요르단 강 서안에 위치한 도시 예리코에는 높이 9미터에 길이 700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성벽이 도시 중앙부를 감싸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주민들의 잉여 농산물과 힘들여 기른 가축을 다른 부족에게 약탈당하지 않도록 안전하게 보존하기 위한 방벽이었던 것입니다.

신석기인이 이전 인류와 또 달랐던 점은 추상적 사유를 발전시켰다는 것입니다. 추상적 사유란 눈에 보이는 대상들에게 보이지 않는 공통 개념을 도출해 낼 줄 알았다는 것을 뜻하며 화폐 개념을 도출하려면 추상적 사유가 필요합니다. 가령 감자 두 포대 또는 쌀 한 포대가 똑같이 '조개 10개'에 해당하는 가치를 지녔을 알아야 합니다. 고대 문명이 탄생한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에서도 추상 개념은 완전히 성숙하지 않아 일부 지역에서는 양 세 마리와 소 세 마리를 세는 단위가 달랐습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인류 역사는 인간 정신의 점진적 발전 과정, 즉 정교한 추상화에 이르는 지루한 역사인 셈입니다. 내세에 대해 관념이 싹트고 원시 종교가 태동한 시기도 신석기입니다. 신석기 어느 시점에 먹을 게 남아돌면서 물질적 조건에 비롯해 정신세계까지 모두 뒤흔든 이 모든 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예리코에서 출토된 성벽 흔적, 출처 : 위키페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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