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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세계사

거리와 정보: 중세 유럽의 소통 방식과 그 한계

by EDMBLACKBOX 2023. 7.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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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체국의 역사는 찰스 2세가 설립한 1660년으로 올라갑니다

천리를 건너는 소식: 서신과 고전적인 정보 전달 방법

유럽에서 계몽주의가 꽃피웠지만 여전히 거리는 뛰어넘기 힘든 적이요, 정확한 소식은 사치였습니다. 유럽에서조차 사회는 소문과 억측에 시달렸습니다. 어떤 정보든 관련 서신을 기다린 후에야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서신은 언제 도착할지, 과연 도착은 할지도 알 수 없어서 동시에 여러 경로로 발송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인도에서 영국까지는 홍해나 페르시아만을 건너는 방법으로 중동을 통과하거나 해로로 희망봉을 돌아서 갔습니다. 콘스탄티노플에서 런던까지는 비엔나를 거쳐 육로로 가든지, 아니면 아드리아해를 건너 베네치아로 간 뒤 육로를 이용했습니다. 혹은 지중해를 따라 마르세유로 간 뒤 육로로 가거나, 해로만 이용하는 방법도 있었습니다.

 

이런 한계점에 대한 대응으로 유럽에서는 15세기부터 우편배달 체계가 발달했습니다. 처음에는 정부가 운영했지만 점차 민간에 넘어가면서 상업과 신문의 발달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도로 건설에 특히 일본과 프랑스는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속력은 동물의 인내와 체력에 의해 결정되었고, 일본, 아프리카 사하라 이남 지역, 남아메리카를 포함한 많은 지역에서는 대부분 인간이 직접 운반했습니다. 날씨는 도로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눈이 녹거나 폭우가 내리면 강을 걸어가 건너가기는커녕 연락선으로도 건널 수 없었습니다. 강은 가뭄, 결빙, 그리고 둑의 상태에 따라 달라졌고, 산맥도 눈이 내리거나 얼음이 얼면 횡단이 불가능했습니다.

 

해상교통에도 상당한 발전이 있었습니다. 배의 키가 발달하고, 특히 18세기에는 경도 측정이 가능해지면서 배의 위치를 더 정확히 계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빙하가 있거나 바람이 강하게 불면, 반대로 불지 않으면 항해가 어려웠습니다.

 

전신과 철도, 중기선이 개발되기 전에는 정보전달이 상당히 힘들었습니다. 당시 편지를 배달할 때, 운반책의 실수, 빈번한 사고, 알 수 없는 일들이 자주 발생한 것도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현재 즉시 전달되는 정보의 편리함을 누리는 데에는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와 인내, 그리고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인류의 지식과 기술이 발전하면서, 더 빠른 정보전달을 위해 수많은 방법들이 개발되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는 정보의 교환을 통한 세상과의 연결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전자기기나 인터넷 등의 기술은 이러한 과거의 노력과 발전의 결과물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것들은 우리가 손쉽게 정보를 얻고 전달할 수 있게 해주는 도구일 뿐만 아니라, 인류의 문명 발전을 상징하는 중요한 유산입니다. 이러한 과거의 노력을 이해하고 존중함으로써, 우리는 현재의 편리함을 더욱 깊이 있게 이해하고 더욱 감사할 수 있을 것입니다.

 

 

The History Press | A short history of the Post Office

The Post Office dates way back to 1660 when it was established by Charles II.

www.thehistorypress.co.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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