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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세계사

루터부터 가톨릭 재기까지: 16세기 종교개혁의 파도

by EDMBLACKBOX 2023. 7.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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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틴 루터의 95개조 반박문

유럽은 해외에서 경제적 확장을 이어갔지만 국내에서는 상당한 혼란을 겪고 있었다. 가톨릭교회의 부패로 불안감이 팽배하던 시절, 독일의 수도사 마르틴 루터는 1517년 비텐베르크의 한 교회 문에 직접 작성한 95개 논제를 꽂아놓음으로써 참혹한 심정을 공론화했습니다. 루터가 촉발한 종교개혁은 로마 가톨릭교의 부활이 될 수도 있었지만, 이내 루터교와 칼뱅주의를 필두로 하는 신교라는 전혀 다른 종교 체계를 탄생시켰습니다.

 

교황의 권위를 거부한 신교는 교회가 아닌 성경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이로 인해 성경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의 중요성이 강조되었고, 라틴어가 아닌 토착어로 된 성경이 선호되었습니다. 새로운 인쇄술은 종교개혁의 성공에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루터의 설교를 교회가 파기하는 것보다 인쇄기를 이용해 더 빠르게 전파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종교 개혁은 신앙의 중요한 전통적 관행을 무너뜨렸습니다. 죽은 자를 위한 미사가 중단되고 성지와 성령, 기적에 대한 공격이 시작되었습니다. 신교도들은 성서 속 시대에는 기적이 일어났지만 이후 중단되었고, 가톨릭교회의 반대 주장은 잘못된 정보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했습니다.

 

 

종교개혁자들인 베자, 마르틴 부서, 하인리히 불링어, 장 칼뱅, 존 녹스, 퍼킨스, 버르미그리, 잔스키, 외코람파디우스, 쯔빙글리가 복음을 대표하는 촛불을 가진 루터주변에 모여있는 모습

신교는 스칸디나비아와 스코틀랜드, 잉글랜드, 네덜란드, 스위스, 독일 등의 지역에서 국교회가 되었습니다. 특히 잉글랜드 교회는 명백한 국민 교회였습니다. 루터교는 스칸디나비아와 독일 북부에서 주요 신교 교파가 되었으며, 스코틀랜드, 제네바, 네덜란드, 독일 일부 지역은 칼뱅주의를 따랐습니다.

 

이 같은 신교의 확산에 맞서기 위해 가톨릭 교회는 16세기 중반부터 재기를 위한 반종교개혁에 돌입했습니다. 1545년부터 1563년까지 트리엔트공의회는 교회의 핵심 교리를 재확인했습니다. 새로운 종교 질서가 확립되었고, 성물 매매와 같은 최악의 부패를 뿌리 뽑기 위한 개혁이 일어났습니다. 1614~1648년에는 오스트리아와 체코, 헝가리, 슬로바키아, 벨기에, 프랑스, 폴란드, 독일의 상당한 지역에서 재기에 성공한 가톨릭교가 신교를 무찔렀습니다.

 

 

3줄 요약

1. 1517년, 독일의 수도사 마르틴 루터는 가톨릭교회의 부패에 대한 비판의 논문을 작성, 이를 통해 종교 개혁을 촉발하였고, 이로 인해 루터교와 칼뱅주의를 중심으로 한 신교가 탄생

2. 신교는 교황의 권위를 부정하고 성경 중심의 신앙을 강조, 이는 성경 해석과 이해의 중요성에 대해 집중하였고, 이는 신교의 전파와 확산에 도움

3. 가톨릭교회는 신교의 확산에 맞서 반종교개혁을 시도, 이를 통해 교회의 부패를 정화하고 신교를 저지하는 데 일정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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