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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세계사

세상을 변화시킨 르네상스: 교육, 문화, 예술의 전환점

by EDMBLACKBOX 2023. 7.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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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의 예술가들: 좌측 상단부터 라파엘, 레오나르도 다빈치, 알브레히트 뒤러, 지오토, 티치아노, 도나텔로, 미켈란젤로, 틴토레토, 산드로 보티첼리, 히에로니무스 보쉬

중세 유럽에서 교육과 문화의 전환점: 르네상스의 시작

수 세기 동안 서구 기독교 국가들의 교육과 문화는 대게 수도원에서 한정적으로 이루어졌고, 주제 역시 신학이 대부분이었습니다. 학문적 연구도 종교 교리를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며 그림과 건축, 음악 역시 교회의 영억이었습니다. 15세기 이탈리아 북부와 중부를 휩쓴 문예부흥운동 르네상스가 이 상황을 완전히 바꾸지는 못했지만 평신도와 성직 임명권자들의 우려에 공감대를 형성했습니다. 13세기부터 이탈리아 도시들을 중심으로 중간 계급의 생활의 질이 높아지자 부유층은 자녀, 특히 아들들에게 더 나은 교육 기회를 제공하고자 애썼습니다.

 

 

인본주의의 등장과 르네상스 예술의 발전

르네상스는 예술의 영역을 훨씬 뛰어넘었습니다. 14세기부터 시인 페트라르카에 영감을 받은 일련의 이탈리아 학자들은 '인간 연구(Studia humanitatis)'라고 이름 붙인 고전 문학을 기반으로 새로운 교육 요강을 제안했습니다. 이후 인본주의자들은 여기에 신학을 포함시키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기독교 교리를 아예 거부하지도 않았습니다. 대신 인간이 신을 섬기는 방법이 아니라 고결한 인간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강조하는 데 교육의 중점을 두었습니다. 르네상스로 예술 활동 역시 급증했고, 그 중심에 라파엘로,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 등의 이탈리아 예술가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관점의 이해와 제시, 그리고 인간 신체 묘사에 있어 기술적 진보를 이룬 다른 이탈리아 예술가들의 업적을 기반으로 활약했습니다. 대표적으로 도나텔로의 성 게오르기우스 및 다비드를 포함한 여러 조각상들을 들 수 있는데, 두 작품 모두 피렌체 바르젤로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 도시 풍경

다양성을 품은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원동력은?

르네상스를 통해 엄청난 다양성과 에너지가 분출된 건 이탈리아 자체의 다양성 덕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베네치아, 로마, 피렌체 등의 도시들은 문화적 창의성과 르네상스를 꽃피운 콰트로첸토의 중심이 되었다. 15세기에는 피렌체가 이런 활동의 최전선에 있었지만, 16세기에 접어들면서 로마와 베네치아에 그 지위를 내주게 됩니다. 라파엘과 미켈란젤로의 작품들은 전자, 조르조네, 티치아노, 그리고 틴토레토는 후자에 해당합니다. 피렌체의 역사가 프란체스코 귀치아르디니는 이탈리아의 영토 분열이 다양성과 경쟁을 낳았고 이 과정에서 예술적 기량이 높아졌다고 분석했습니다. 분열로 인해 일부 도시들은 독립할 수 있었고, 덕분에 이탈리아의 특색 있는 도시 문화가 탄생했습니다.

 

 

실용주의와 이상주의가 공존하는 르네상스 사상

르네상스 사상은 그리스 로마 작품의 재발견으로 등장한 새로운 정보를 이해하고 체계화하려는 노력으로 대변됩니다. 그럼으로써 지식을 이해하고 해설할 수 있는 자연 철학을 확립하려 했습니다. 르네상스는 좋은 정부의 이상을 제시하기도 했지만 가차 없는 실용주의의 모습도 보여주었습니다. 대표적으로 씁쓸하고 모순적이며 민감한 권력을 획득하는 지침이 담긴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들 수 있습니다. 르네상스 사상 내에서는 신구(新舊) 사상이 공존하고 상호보완적 역할을 했습니다. 예를 들어 과학과 점성술의 상호작용으로 우주의 주기와 인간의 삶에 미치는 여향이 중요하게 탐구되었습니다.

 

 

북부 르네상스의 중심지인 벨기에의 브뤼주(Bruges)와 헨트(Ghent)의 도시 풍경

이탈리아 너머로! 북부 르네상스와 지식인들의 확산

르네상스는 자연 세계에 대한 연구, 그리고 평화와 신성한 목표를 달성하려는 기독교의 헌신을 조화시켜 세계를 설명하려 했습니다. 학문적 가설이 종교뿐 아니라 연금술과 마술에도 대입되었습니다. 신의 명령과 대비되는 개념인 조화가 선을 이룰 수 있는 수단일 뿐 아니라 본질적 선으로 여겨졌으며, 예술은 그 절차로서 존재했습니다. 훨씬 정확한 묘사는 신의 작업과 인간의 영역을 보여주는 절차의 일환이었습니다. 이를 위한 예술과 과학의 결합은 수학적 지식의 발전에 기대 관점을 이해하고 활용한 것과 같은 차워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르네상스가 이탈리아에서 시작되어 전성기를 맞기는 했지만 다른 지역으로도 확산되었습니다. 북부 르네상스는 브뤼주와 헨트를 중심으로 벨기에 대도시들에서 번창했습니다. 르네상스 지식인들 역시 훨씬 다양한 지역에서 활동했는데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프랑스, 네덜란드 학자 데시데리위스 에라스뮈스는 영국에서 활약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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