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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한국사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철기시대의 생활과 문화

by EDMBLACKBOX 2021. 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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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석기시대의 생활상

한반도에서 70만 년 전 시작된 구석기시대 사람들은 뗀석기(돌을 깨뜨려서 만든 도구, 구석기시대는 뗀석기, 신석기시대는 간석기 사용)를 사용하였습니다. 뗀석기를 이용하여 열매 채집, 사냥, 물고기 잡이 등으로 식량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구석기시대 사람들은 먹을 것을 따라 이동 생활을 하였으며 임시 거주지로는 동굴, 강가의 막집 등을 활용하였습니다. 대체로 경험이 많은 연장자가 무리를 이끄는 흔적이 보였으며 계급은 존재하지 않는 평등 사회였습니다.
구석기시대 전기에는 주먹 도끼나 찍개를 사용하였는데 후기로 오면서 석기를 다듬는 기술이 발달하여 긁개, 밀개, 자르개, 슴베찌르개 등 도구가 다양화되었습니다.

좌측부터 주먹 도끼, 슴베찌르개, 출처 : 위키페디아, 우리역사넷

구석기시대에도 다양한 예술 활동을 하였습니다. 공주 석장리, 단양 수양개 유적 등에서는 풍요로운 생산을 기원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고래나 물고기 조각품 등이 발견되었습니다.
대표적인 구석기시대 유적으로는 평남 상원 검은모루 동굴, 경기 연천 전곡리, 충남 공주 석장리, 충북 청원 두루봉 동굴, 충북 제천 점말 동굴 등이 있습니다.

좌측부터 평남 상원 검은모루 동굴과 경기 연천 전곡리 유적, 출처 : 우리역사넷, 한국관광공사

경기도 연천 전곡리 유적에서는 동아시아에서 최초로 아슐리안 계통의 주먹도끼가 발견되었습니다. 이는 인도 동쪽 단면 석기인 찍개 문화만 존재했다는 모비우스 이론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최초의 증거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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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비우스 이론이란?
인도를 중심으로 서아시아와 유럽, 아프리카는 양날을 가공한 주먹 도끼를 사용하였고, 인도 동쪽인 동아시아와 아메리카는 한쪽 날만 가공한 찍개를 사용하였다고 하는 이론입니다. 이 이론은 이미 구석기시대부터 동아시아 지역이 인종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유럽보다 열등하였다는 주장의 근거가 됩니다. 하지만 1978년 경기 연천 전곡리에서 다수의 아슐리안형 주먹 도끼가 발견됨으로써 이 이론은 뒤집어지게 되었습니다.

 

신석기시대의 생활

기원전 8000년에 시작된 신석기시대는 농경과 목축이 시작되면서 식량을 생산하는 단계로 발전하였습니다. 그 결과 강가나 해안가에 움집을 짓고 마을을 이루어 정착 생활을 하게 되었고 씨족 중심의 부족 사회를 형성하였습니다.
움집 바닥은 원형이나 모서리가 둥근 사각형 모양이었고, 중앙에는 취사나 난방을 위한 화덕이 있었습니다. 신석기시대에도 구석기시대와 마찬가지로 평등사회였습니다.

신석기시대에는 간석기로 농기구를 만들어 사용하였고 토기를 만들어 음식을 조리하거나 저장하였으며 갈돌과 갈판으로 곡식을 가공하여 먹기도 하였습니다. 신석기시대 초기에는 이른 민무늬 토기나 덧무늬 토기 등이 만들어졌고, 이후 빗살무늬 토기 등이 제작되었습니다. 그밖에 가락바퀴와 뼈바늘을 이용하여 옷이나 그물 등을 만드는 원시적 수공업이 이루어졌습니다.

좌측부터 빗살무늬 토기, 가락바퀴, 갈돌과 갈판, 출처 : 위키페디아, 우리역사넷

농경 생활을 하면서 애니미즘, 샤머니즘, 토테미즘 등의 원시 신앙도 생겨났으며 이를 바탕으로 조개껍데기 가면, 동물의 뼈나 이빨 등으로 만든 치레 걸이(장식을 위한 장신구 또는 액세서리) 등의 예술품을 만들었습니다.
신석기시대의 유적으로는 서울 암사동, 제주 한경 고산리, 평양 남경, 부산 동삼동, 강원 양양 오산리 등이 있습니다.

 

신석기시대의 원시 신앙

애니미즘 농사에 영향을 미치는 자연 현상이나 태양, 물 등의 자연물에 정령이 있다고 믿는 사상
샤머니즘 하늘이나 영혼을 인간과 연결해주는 무당의 주술적 힘을 믿는 사상
토테미즘 특정한 동식물을 자신의 조상과 연결하여 숭배하는 사상

 

구석기시대와 신석기시대 비교 표

구분 구석기 시대 신석기 시대
시기 약 70만 년 전부터 시작 기원전 8000년경(약 1만 년 전)부터 시작
도구 뗀석기, 뼈 도구 사용
주먹도끼, 찍개, 슴베 찌르개(사냥용)
긁개, 밀개(조리용)
간석기 사용
돌괭이, 돌낫(농기구)
토기 : 이른 민무늬 토기, 덧무늬 토기(곡식 저장, 조리용)
가락바퀴, 뼈바늘(옷이나 그물 제작 - 원시적 수공업)
갈돌과 갈판(곡식 가공용)
경제 채집, 사냥, 물고기 잡이(자연에 의존)
불을 사용함
채집, 사냥, 물고기 잡이와 농경, 목축 시작(생산 경제 시작 - 신석기 혁명)
조, 피, 수수 등 재배(밭농사 중심)
주거 동굴, 바위 그늘, 막집 강가나 해안가의 움집(원형이나 사각형, 중앙에 화덕 위치)
사회 이동 생활, 무리 생활, 평등 사회
경험이 많은 연장자가 무리를 지도
정착 생활, 씨족 중심의 부족 사회, 평등 사회
예술 또는 신앙 고래, 물고기 조각(사냥 성공과 풍요 기원) 조개껍데기 가면, 치레걸이
애니미즘, 샤머니즘, 토테미즘
유적지 전국에 골고루 분포함
경기도 연천 전곡리(동아시아 최초 아슐리안형 주먹도끼 발견), 충남 공주 석장리, 충북 청원 두루봉 동굴, 충북 제천 점말 동굴 등
주로 강가나 해안가에 분포
서울 암사동, 부산 동삼동, 강원 양양 오산리, 제주 한경 고산리 등

 

청동기 시대의 생활상

기원전 2000년경에서 기원전 1500년경 시작된 청동기 시대에는 신석기시대보다 농업이 식량 생산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거주지는 주로 강을 끼고 있는 산 주변 등 구릉지에 위치한 배산임수(산을 등지고 물을 바라보는 입지)의 형태를 보여줍니다.
부여 송국리 유적에서 볼 수 있듯이 나무 울타리(목책)나 도랑(환호)으로 마을을 둘러싸 외부 세력의 침입에 대비하기도 하였습니다. 주거 형태는 움집에서 지상 가옥 형태로 변화되었으며 움집 중앙에 있던 화덕은 한쪽 벽으로 옮겨지고 창고 같은 독립된 저장 시설을 집 밖에 따로 설치하기도 하였습니다.

청동기 시대에는 농업이 본격화되어 조, 수수, 보리, 콩 등이 재배되었습니다. 일부 저습지에서는 벼농사도 이루어졌으며 농기구는 곡식을 수확하는 반달 돌칼을 비롯하여 돌괭이, 돌보습, 바퀴 날 도끼, 홈자귀 등과 같은 간석기가 주를 이루었습니다.

청동기는 비파형 동검이나 거친 무늬 거울 등과 같은 무기와 제기, 장신구 등을 만드는 데 주로 사용되었습니다. 토기는 민무늬 토기, 미송리식 토기, 붉은 간 토기 등을 사용하였습니다.
청동기 시대에는 농경이 발달하여 잉여 생산물이 생기게 되자 사유 재산이 발생하였고 생산물을 차지하기 위한 전쟁이 벌어지면서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계급이 발생하였습니다.

정치권력이나 경제력이 우세한 부족은 스스로 하늘의 자손이라고 믿는 선민사상을 가지고 청동제 무기를 사용하여 주변을 정복하였고, 이 과정에서 지배자인 군장이 등장하였습니다. 정치와 제사를 주도하던 군장이 죽으면 많은 사람들이 동원되어 고인돌이나 돌널무덤을 만들었습니다.

좌측 상단부터 반달돌칼, 부여 송국리 유적, 비파형 동검, 고인돌, 출처 : 위키페디아, 우리역사넷

청동기 시대 무덤 : 고인돌, 돌널무덤 등
철기 시대 무덤 : 널무덤, 독무덤 등

 

철기 시대의 생활

기원전 5세기경 한반도에 철기가 전래되면서 삽, 괭이, 낫과 같은 철제 농기구가 보급되어 농업 생산력이 급속히 증대되었으며 저수지가 축조되고 벼농사가 발달하였고, 목축이 확대되었습니다. 이와 더불어 칼이나 창 등 철제 무기를 사용한 부족 간의 전쟁도 빈번하게 일어났습니다.
철기 시대에는 청동기 문화가 더욱 발전하여 비파형 동검은 세형동검으로, 거친 무늬 거울은 잔무늬 거울로 변화하였고, 거푸집이 발견됨으로써 우리나라에서 독자적인 청동기 제작이 이루어졌음이 확인되었습니다.

철제 무기와 철제 농기구가 사용되면서 청동기는 점차 의례용 도구로 변화하였습니다.
토기는 민무늬 토기 이외에 덧띠 토기, 검은 간 토기 등이 사용되었으며 무덤으로는 널무덤, 독무덤 등이 만들어졌습니다. 또한 당시 중국의 화폐인 명도전, 반량전, 오수전 등이 출토되었고 경남 창원 다호리 유적에서는 한자가 전래되었음을 짐작하게 하는 붓이 출토되었는데 이를 통해 철기 시대에 중국과 활발히 교류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청동기·철기 시대의 사람들은 바위에 그림을 자주 그렸습니다. 울산 울주 대곡리 반구대 바위그림, 울산 울주 천전리 바위그림, 경북 고령 양전동 장기리 알터 바위그림 등이 남아 있으며 이 그림들은 사냥과 고기잡이의 성공과 농사의 풍요를 기원하기 위해 그렸거나 이 그림을 그린 장소를 종교 제단으로 사용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좌측부터 세형 동검, 거푸집, 거친 무늬 거울, 출처 : ZUM, 위키페디아 등

 

청동기 시대와 철기 시대 비교 표

구분 청동기 시대 철기 시대
시기 기원전 2000년경~기원전 1500년경 기원전 5세기경
도구 청동기 사용 : 비파형 동검, 거친 무늬 거울, 청동 방울 등(주로 무기, 제기, 장신구로 사용)
농기구 : 주로 간석기(반달돌칼, 돌보습, 돌괭이 등)
청동기의 의기화 : 세형동검, 잔무늬 거울, 거푸집(한반도의 독자적인 청동기 문화 발전)
농기구, 무기 : 대부분 철로 제작
토기 민무늬 토기, 미송리식 토기, 붉은 간 토기 민무늬 토기, 덧띠 토기, 검은 간 토기
무덤 고인돌, 돌널 무덤 널무덤, 독무덤
경제 농업 본격화 : 밭농사 활발, 벼농사 시작
농기구 : 대부분 간석기
반달돌칼(수확용), 돌보습, 돌괭이, 바퀴날 도끼 등
벼농사 발달(저수지 축조)
철제 농기구 사용
중국과 활발한 교류
- 중국 화폐 : 명도전, 반량전, 오수전
- 한자 사용 : 붓 출토
사회 사유 재산제, 계급 발생
군장 등장, 선민사상
제정일치 사회(군장이 정치와 종교 지배)
철제 무기를 이용한 부족간 전쟁 활발
여러 나라 출현(부여, 고구려, 옥저, 동예, 삼한 등)
제정 분리 사회(정치와 종교 지배자 분리)
주거 위치 : 방어와 농경에 유리한 구릉 지대에 위치(배산 임수 지형)
형태 : 지상 가옥화, 중앙에 있던 화덕이 벽으로 이동, 집 밖에 독립 저장 시설 마련
방어 체제 : 방어를 위한 나무 울타리(목책), 도랑(환호) 설치
예술과 신앙 바위 그림(암각화) : 울산 울주 대곡리 반구대, 울산 울주 전천리, 경북 고령 장기리 알터 등
(사냥과 고기잡이의 성공 기원, 종교 제단 등으로 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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