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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세계사

미국의 독립 전쟁, 영국에 대한 도전과 세계적 갈등

by EDMBLACKBOX 2023. 7.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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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5년 4월 19일, 메사추세츠의 렉싱턴에서 영국군과 미국 민병대가 전투를 벌였다.

잃어버린 자들: 원주민들과 미국의 독립

미국 독립전쟁은 1775년 과세를 포함해 북아메리카 식민지에 대한 규칙을 제정하려는 영국의회의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시작돼 1776년 독립을 위한 투쟁으로 변모했습니다. 그리고 그해 3월 말, 반란이 일어난 식민지 13곳에서 모든 영국군이 추방당했습니다.

 

영국은 세계 최고의 해상 강국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가공할 만한 무력으로 반격했습니다. 그 결과 1776년 뉴욕 1778년 사바나, 1780년 찰스턴을 점령했습니다. 전쟁은 1783년까지 계속됐는데 이후 판세를 가늠하기가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영국은 롱아일랜드, 브랜디와인, 캠던에서, 미국은 사라토가에서 승리하면서 어느 쪽도 상대편을 제압했다고 할 수 없었습니다.

 

 

1820년, 존 트럼벌이 그린 '미국 독립 선언'이 워싱턴 DC의 미국 국회의사당에 걸렸다.

이때 프랑스가 반란군 측을 지원하면서 전쟁이 세계적 차원으로 확대되고 곧이어 스페인까지 프랑스 편에 가세하면서 형세가 극적으로 달라졌습니다. 1781년 북아메리카 요크타운에서 아메리카와 프랑스 연합국에 패배한 영국은 1782년 국내에서도 정치적 위기에 직면해 아메리카의 독립을 인정해야 했지만 다른 식민지들은 대부분 그대로 유지됐습니다.

 

독립은 영토 확장으로 이어졌습니다. 1783년 영국이 북서부 지역, 애팔래치아 서부, 아메리카 순으로 영토를 양도해 식민지 13곳 이외에도 광활한 지역을 확보했습니다. 사실 그곳에는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거의 살지 않았습니다.

 

이 모든 과정에 원주민에 대한 언급이나 동의 없이 미국의 주장과 전쟁, 정착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원주민들은 인간 발달의 초기 단계 정도로 취급되었고, 미국 방식의 '문명화'를 받아들이지 않는 한 북아메리카의 미래를 공유할 수 없었습니다. 미국은 야망과 불안 속에서 영토 확장을 계속해 나갔지만 캐나다 정복에 실패해 캐나다 대영 제국의 일부로 남았습니다.

 

따라서, 미국 독립전쟁은 단순히 북아메리카의 13개 식민지만의 독립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후의 영토 확장, 원주민에 대한 대우, 그리고 국제적인 교차점에 이르는 길을 통해 미국이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게 된 과정을 의미합니다. 이 전쟁은 이후의 미국 역사를 형성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지만, 그 과정에서 발생한 다양한 충돌과 갈등은 아직도 우리 사회에 영향을 미치며 끊임없이 논의되고 있습니다. 미국의 독립과 성장은 용기와 결단력의 산물이었지만, 그 과정은 모두가 동등하게 혜택을 받지 못한 복잡한 역사였습니다.

 

미국 독립 전쟁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미국 독립 전쟁(영어: American War of Independence, 1775년 4월 19일 -1783년 9월 3일) 또는 미국 혁명 전쟁(영어: American Revolutionary War)[4]은 18세기 영국과 13개 식민지 사이

ko.wikipedi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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